나는 농담한다, 고로 존재한다

농담이 생업인 스탠딩 코미디언이 있다. 죽은 어머니가 이복형(異腹兄)에게 남긴 편지를 발견하면서, 민간 우주비행사였던 형이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됐음을 알게 된다. 교신 끊긴 관제센터를 향해 띄우는 형의 말 편지와 코미디클럽에서 내뱉는 동생의 개그가 비슷한 체질의 농담으로 변해간다. 지난해 동인문학상 수상자 김중혁(45)씨가 새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를 내놨다. "농담이 내 소설의 요체"라 주장하는 그와의 인터뷰를 소설 속 코미디언에 빗대 녹여봤다.

"네가 뭔 코미디냐 물으신다면, 저야말로 코미디언입니다. 글 쓰는 자로서, 온갖 수다스러운 연기를 도맡아야 하죠. 집필이란 것도 실은 코미디랑 비슷합니다. 취재도 해야 하고요. 예를 들어, 대변을 보는 와중에 가래를 뱉고 싶을 때가 생깁니다. 깔끔한 처리를 위해 허벅지를 최대한 벌려 변기 속으로 침을 낙하시켜야 하는 겁니다. 벌써 역겹다고요? 근데 침이란 놈이 원체 탄성이 좋아 잘 안 끊긴단 말이죠. 변기 수면을 스쳤다가 다시 입을 향해 튀어오르는 재앙! 자체 심의를 위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소설에 쓴 내용인데, 이런 게 다 취재와 메모에서 나오는 거란 말입니다. 실제 경험이냐고요? 노코멘트.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도 명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 같은 영적 스승들이 '바깥에서 바라보는 나'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이복형제가 지구 안팎에서 서로를 떠올리는 그림을 구상하게 됐죠. 영화 '그래비티'도 큰 영향을 줬네요. 우주 미아가 된 조지 클루니가 마지막까지 계속 농담 따먹기 하는 장면요. 영화 '마션'에 나오는 화성에 혼자 남은 남자도 인상 깊었고요.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꽤 된대요.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음 때문이라네요. 그러니 제게 '이 소설은 어디서 왔는가' 물으신다면, 그냥 그렇게 된 거라고 말씀 드리고 싶군요. 참고로 저는 무교(無敎)입니다.

소설 쓰려고 책도 많이 샀어요. 세상에, 이 우주엔 왜 이리 많은 우주책이 존재하는 겁니까? '코스모스' '문 더스트', 심지어 '나사 우주 개발의 비밀'까지 읽었다니깐요. 제 소설 읽으신 분은 '엥? 그런 내용 별로 없던데?' 하실 수도 있겠군요. 일부러 줄인 겁니다. 정말입니다. 이건 SF 소설이 아니잖아요. 농담에 집중했죠. 스탠딩 코미디 영상도 엄청 봤어요. 루이스 C.K, 앨리 웡…. 하도 봐서 질릴 줄 알았는데, 갈수록 웃기데요. 역시 웃음도 느는 겁니다.

농담은 저를 지탱하는 삶의 방식이에요. 세상과 맞서 싸울 저만의 무기. 소설 제일 마지막 장에 '내 농담이 전 우주를 떠돌고 있으면 얼마나 기쁘겠어'란 대사로도 써먹었죠. 농담은 삶의 중력을 가볍게 해줍니다. 스펙터클하고 심장 조여주는 얘기도 있어야겠지만, 저기 구석에서 느긋한 인간이 농담처럼 쏟아내는 소설도 필요한 거라고요. 점점 하고 싶은 농담이 많아져요. 제 별명이 한때 '일매(一枚) 김중혁'이었어요. 하루에 1매만 쓴다고. 근데 요샌 책을 1년에 1~2권씩 내고 있다니깐요. 요즘은 난민을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 중이에요. 우주를 배경으로 써봤으니, 지구의 국경도 넘어가 봐야죠. 조만간 다른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근데 말이죠, 지금껏 제가 한 말이 전부 진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