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자꾸 오그라드는 내 손발… 누가 지켜줄까

'끝까지 보고 싶은데… 오그라드는 내 손발 지킬 수 있을까?'

일주일 차이로 출발한 월화드라마 KBS2 '구르미 그린 달빛'과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런 소감이 꽤 많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멋있는 척하거나 개연성 없는 설정이 태연하게 이어질 때면 이런 평이 줄을 잇는다.

'구르미'와 '달의 연인'은 둘 다 '퓨전사극'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창작됐다'는 '경고문'이 매회 시작 전 등장한다. 역사적 깊이나 디테일, 고증 같은 건 신경 쓰지 말라는 뜻. 장르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구르미'는 한국 웹소설, '달의 연인'은 중국 유명 소설·드라마로 원작이 따로 있다. 조선 후기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구르미')와 고려 태조 왕건의 황자들('달의 연인'), 즉 왕의 아들 이야기다. 남장여자('구르미'), 시간이동('달의 연인')처럼 그간 퓨전사극에서 흔히 봐온 흥행 코드를 그대로 썼다.

그런데 시청률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난 30일 '구르미' 4회는 16.4%(닐슨코리아), '달의 연인' 3회는 7.0%를 기록했다. '달의 연인'은 신선한 요소가 꽤 많다. 꽃미남 황자 7명이 떼로 몰려나와 경쟁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왕후는 아들 심신에 상처를 남기는 요부 악녀로 그려진다. "잔인하고 냉혹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어린아이처럼 갈구하는 이준기의 연기,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키는 그의 캐릭터도 돋보인다."(김윤덕 기자)

하지만 아직까지는 중년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인물 각자의 내면을 깊이 묘사하기 힘든 구조이다 보니 이준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황자들 나올 땐 시트콤 같다가 중장년 연기자 나올 땐 갑자기 살벌하고 비장해지니 어지럽다."(양지호 기자) 드라마가 만화처럼 과장돼 보이고 뮤직비디오처럼 때깔에만 집착하는 듯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구르미'는 친숙하고 안정적이라 몰입하기 쉽다. '달의 연인'에선 최소 5각 이상 관계가 펼쳐질 예정이지만 '구르미'는 시청자에게 가장 익숙한 3각 관계로 진행된다. '달의 연인'은 수많은 황자가 여러 팀으로 나뉘어 갈등을 벌이는 반면 '구르미'는 사극에 늘 등장하는 왕과 신하의 권력 다툼으로 집약된다. 박보검·김유정이 동화처럼 풋풋한 화면을 만들어내고 코믹한 요소도 많다.

효명세자가 스물하나에 요절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으니, 가볍고 밝은 전개 속에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는 애틋함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퓨전사극 최고의 히트작 '해를 품은 달' 재탕에 가깝다. '해품달'로 수퍼스타가 된 김수현만큼 박보검이 극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 "1·2회 코믹연기는 어색했지만 권력 암투를 헤쳐 나가는 총명하고 다소 괴팍한 세자 역할을 박보검이 점점 더 믿음직스럽게 소화하고 있다"고 양지호 기자는 박보검을 편든다. "여자인 김유정이 어떻게 내관이 되는지가 중요한데 그 과정이 각종 우연과 실수의 연속으로만 설명된다. 드라마를 계속 볼 의지가 한풀 꺾였다."(최수현 기자)

"두 작품 모두 참을 수 없이 가볍다. 죄다 삼각, 오각 관계뿐이니 사극의 교육적 역할은 아예 포기해야 하나?"(김윤덕 기자)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건 결국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게 퓨전사극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될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