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검사'에 계좌 빌려준 변호사, 또다른 뇌관

김형준(46) 부장검사가 고교 동창 사업가 김모(46)씨에게 돈을 받을 때 은행 계좌를 빌려준 박모(46) 변호사가 이번 '스폰서 검사 사건'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부장검사는 김씨로부터 받은 15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박 변호사의 아내 계좌로 받았다. 박 변호사가 아내의 계좌 정보를 건네줄 정도로 김 부장검사와 가까웠다는 얘기다. 김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는 사법시험 1년 선후배로 검찰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박 변호사가 주식 투자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수사 의뢰된 사건을 김 부장검사가 담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검찰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작년 10월 상장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투자한 혐의로 박 변호사를 대검에 수사 의뢰했다. 대검은 이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으로 내려 보냈고, 남부지검 산하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이 사건을 맡았다. 당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이 김 부장검사였다. 수사 의뢰 후 이 사건은 1년 가까이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 부장검사가 친구인 박 변호사를 수사 의뢰한 사건을 배당받고도 모른 척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에도 주식 보유 신고 의무 위반으로 박 변호사를 또 수사 의뢰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박 변호사가 김 부장검사에게 아내 은행 계좌를 빌려준 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은행 계좌를 빌려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법률가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김 부장검사에게 아내 계좌만 빌려준 게 아니라 스폰서 사건에도 깊숙이 개입돼 있다. 스스로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역할을 해 왔다고 폭로한 고교 동창 김씨는 올 4월 사기·횡령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됐다. 김씨는 자신의 고소 사건을 김 부장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가 차장검사로 있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옮겨 수사받기 위해 한 거래 업체에 자신을 고소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박 변호사였다고 한다.

대검 감찰본부는 최근 박 변호사를 불러 아내 계좌를 빌려준 이유와 실제 계좌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했다. 박 변호사는 "김 부장검사에게 빌려준 돈을 아내 계좌로 돌려받은 것"이라며 "김씨 사건을 고양지청으로 옮겨 수사받게 하자는 것도 김씨가 '서울서부지검에선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변호인으로서 조언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는 평검사 시절인 2006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한 검찰 간부는 "두 사람이 증권·금융 수사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다"며 "박 변호사가 개업한 후에도 종종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검 감찰본부는 김 부장검사 사건을 전담할 특별감찰팀을 꾸렸다. 검찰이 특별감찰팀을 꾸린 것은 2002년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으로 홍모 전 검사를 감찰한 이후 두 번째다. 특별감찰팀장은 안병익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맡았다. 안 팀장은 대검 감찰1과장 때인 2011년 11월 현직 검사가 변호사로부터 벤츠와 명품 가방 선물과 함께 사건 청탁을 받았다는 소위 '벤츠 여검사' 사건을 맡기도 했다. 검찰 내에서 '감찰통'으로 꼽힌다. 법무부는 이날 대검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 부장검사의 직무를 2개월간 정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