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13 10:13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 걷기

유난히도 힘들고 무더웠던 올여름도 결국은 물러나고 걷기에 아주 좋은 계절, 가을이다. 가을에 시작하면 늦으리라고 여름 끝에 걷기모임을 만들었다. 이름 하여 '서울둘레길 걷기모임'이다. 때마침 서울둘레길 완공 20개월여 만에 완주자 1만 명을 돌파하였다는 신문기사와 함께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탓인지 생각보다 많은 회원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고, 지난 9월 4일(일요일)에 첫 걷기행사에는 60명의 회원이 참석하였다.

첫 걷기행사에 참석한 회원들,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코스 12.7Km를 시작점 사당역 4번 출구 앞이다.

서울둘레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진 지 600년이 넘어 지금의 수도 서울은 무려 1,000만 시민을 품에 안은 세계적 대도시로 커졌으며 이 천만의 시민이 살아가야 할 공간적 울타리를 연결하여 산책길을 낸 것이 서울둘레길이다. 동쪽으로는 구리시와 경계를 이루는 용마산, 남쪽으로는 관악산, 서쪽의 행주 덕양산, 북쪽의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지역을 포함하니 이들을 일컬어 외사산(外四山)이라고 하는데 총 8개 구간, 157㎞로 이루어진 서울 둘레길은 지난 2014년 11월에 완전히 개통되었다.

서울둘레길 5코스,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서울대 입구를 거쳐 석수역까지 12. 7Km로 약 6~7시간이 소요된다.

8개 구간이지만 2~3번에 나누어서 걸어야 할 곳도 있고, 일부 구간은 둘레길이라고 하기에는 힘에 벅차지만, 또 일부 구간은 싱겁다고 할 만큼 쉽기도 하여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도전 가능하며 일주일에 하루씩 짬을 내면 석 달쯤이면 완주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제주 올레길은 일단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며 현지 체류비까지 계산할 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서울둘레길은 수도권 전철역에서 쉽게 연결할 수 있고 때로는 산길, 또는 강변을 걸으며 자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는데 큰 매력이 있다.

혹시 나는 저질 체력이 아닐까 망설이는 그대, 지금 바로 배낭 메고 나설지어다.


5코스(관악산) 12.7Km

5코스 1구간은 사당역 - 서울대입구 약 5.8Km로 2시간 30분이 소요되며, 2구간은 서울대입구 - 석수역까지로 약 6.9Km, 3시간 20분이 제시된 수치들이다. 그러나 중간휴식과 점심을 고려하면 넉넉하게 7시간쯤 예상하는 것이 좋다.

특히 관악산은 수도권에서도 소문난 악산이자 바위산이기에 비록 둘레길이라 하여도 업다운이 심하고 체력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지라 본인이 힘에 부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낙성대나 서울대 등에서 걷기를 중단하고 귀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서울둘레길은 중간 어디서도 쉽게 합류하거나 이탈하기가 쉬운 장점도 있다.

사당역 4번 출구에 모여서 출발, 처음에는 주택가를 가로질러 올라가지만, 곧 관음사를 지난다.
이내 숲길을 따라 한 줄로 가게 되는데 서울둘레길이 이미 소문이 나서인지 꽤 많은 사람을 만나곤 하였다.
강감찬 장군상.
낙성대에서 서울대입구를 지나 관악산공원으로 들어서니 전에는 못 보던 거창한 팔작대문이 반겨준다. 이곳도 관악산에 올라가는 주요등산로 중 하나인데 우리는 둘레길이니 옆길로 살짝 빠졌다. 역시 오르막길이다.

1구간, 즉 서울대 입구를 지나면 관악산은 점차 멀어지면서 2구간은 사실상 삼성산 둘레길이다. 계속 산길이 이어지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점점 힘이 부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격려하면서 또한 주위 풍광을 즐기는 여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그저 빨리 내닫기만 하는 것은 둘레길 걷기의 참뜻이 아니다. 더불어 하하 호호 즐겁게 걸으면서 힘들면 쉬어가는 길, 주변에 낯선 풍물이 나타나면 무엇인지 확인도 해보고 발아래 작은 야생화를 만나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앉아서 대화도 나누는 걸음이 진정한 둘레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2구간을 접어들면 오래된 묘지들을 만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남원 윤씨와 전주 이씨 부부합장묘가 나타나 잠시 둘러보았고, 이어서 삼성산 성지로 조성된 천주교 묘지가 있는데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타 정 신부 3인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원래 삼성산은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그래서 이 세 고승을 정화해 산 이름을 삼성산(三聖山)이라 했다는 것인데 우연히도 천주교의 세 성인(聖人)이 모셔지니 삼성산(三聖山)의 이름에 딱 맞는 성지가 되고 만 것이다.

남원 윤씨와 전주 이씨 합장묘와 천주교 성인 3인의 유해를 모신 성지.
7시간 가까이 걷는 산길은 힘들지만 참 아름답다. 때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힘들게도 하지만 누군가가 예쁘게 잘 정비해놓은 산길을 보노라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돌 하나 나무 한 조각을 고이고 버티게 애써준 손길이 고맙기 그지없다.

5코스 관악산둘레길이 끝나갈 무렵이면 호압사(虎壓寺)가 나타난다. 글자 그대로 호랑이를 누르려고 만들었다는 뜻인데 조선 개국초기에 태조 이성계의 꿈에 나타난 호랑이 형상을 제압하려 무학대사가 세웠다는 절이다.

언듯 보아서는 그다지 유서깊은 절집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국가급 문화재 없이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인 약사불좌상을 약사전에 모신 자그마한 절이다. 그러나 가까이에 산림욕장이 있고 차량접근이 가능해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호암산 호압사, 약사전에 약사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마당에는 새로 세운 9층 석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금천구에서 조성한 듯한 산림욕장, 여기저기 좌대나 침상, 산책로가 잘 되어 있었으면 무척 많은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여기서 마지막 2Km 남짓한 거리는 뜻밖에도 나무 휀스로 설치된 산책로가 잘 되어 있다. 원래 둘레길은 흙길이었는데 이곳 휴양림을 조성하면서 금천구에서 길고 튼튼한 목책교를 설치한 덕분이다. 그 옆 흙길이 원래 둘레길이다.

이후 급격하게 내리막으로 떨어지는 산길을 내려오니 눈앞에 갑자기 아파트들이 나타나면서 둘레길은 끝이 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조금 안 되었다. 아침 9시에 모여 인원 파악하고 조 편성하고 9시 20분쯤 출발한 우리는 대략 6시간 30분 이상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열 명쯤이 중도에 하차하였지만 90% 이상이 5코스를 무사히 완주한 것이다.

중간에 3개의 스탬프를 꼼꼼히 찍었고, 사소한 부상이나 낙오자 없이 모두가 5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서로가 격려하고 기뻐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둘레길 걷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모습들이다. 걷기에 지원하고 합류할 때만 해도 6시간, 7시간을 내가 어찌 걸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걷는 내내 남들보다 더 힘들어하는 자신의 저질 체력이 원망스럽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완주하고 난 기쁨은 모든 것들을 깨끗이 날려버리고 자신을 대견해하는 자부심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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