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다섯 별, 서로를 빛내다

멀리 떠 있는 각각의 별빛이 서로를 응원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별밤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차라리 잔치다. 지난 7일,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47회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 5인이 한자리에 모여 상찬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 달, 이 쟁쟁한 성운에서 단 하나의 별이 탄생한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심사위원회(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이승우)가 신중한 토의 끝에 본심 후보 18명 중 추려낸 5명이 서울 중구의 한식집에 모였다. 이날의 좌장 격인 권여선(51)씨가 먼저 소주를 몇 병 주문했다. 지난 5월 술을 소재로 한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를 냈을 때, 문단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였다. "애주가로 소문이 나긴 했지만, 단편집 전체를 술 얘기로 채운 건 처음이에요." '술이 삶의 표현이 될 수 있음을 술 안팎에서 보여주는 이중 거울 같은 책'이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제목도 직접 붙였다. "'ㅇ' 받침이 많아 어두워 보이지 않고 귀엽더라고요." 권씨는 "소설에서 알코올 기운을 걷어내는 게 필생의 과제가 될 것"이라며 잔을 채웠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본격 칭찬이 무르익었다. 당초 표제작을 '낮술'로 내세웠다는 단편집 '베개를 베다'의 윤성희(43)씨가 "권 선배 책에 실린 '봄밤'은 스무 번 넘게 읽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오래 통과한 소설"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권씨는 "윤성희에겐 태작(駄作)이 없다. 은근하던 세계가 어느 순간 넓어져 있는 걸 알겠더라"고 화답했다. '베개…'는 변기회사 경리, 엑스트라 배우 등 인간군상을 통해 필부필부의 생애를 특유의 따뜻한 유머로 풀어낸 소설집.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의 조해진(40)씨가 불콰해진 얼굴로 "윤 선배 소설 속 등장인물은 친구 삼고 싶을 정도로 다정하다"고 말했다. 윤씨가 조씨의 눈가에 붙어 있던 속눈썹을 떼어주며 씩 웃었다.

매물로 나온 집에 몰래 들어가 지내는 부동산중개소 직원, 남의 신분증으로 위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용불량자 등 젊은 남녀의 위태로운 여름을 그린 조씨의 소설은 본심에서 '냉소적 사회 비판 대신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고전적 글쓰기의 기품을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함께 최종심에 오른 권씨가 "폐허에서도 예민하게 빛과 온기를 탐지해내는 작가"라는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거주지와 노동 등 청춘의 불안에 대해 썼는데, 저도 안정적으로 살아온 편은 아니니 거기 제 젊음도 녹아 있을 거예요."

이날의 막내이자, 단편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를 쓴 정용준(35)씨는 "등단 전부터 여기 계신 선배들의 충실한 독자였다"며 두 손을 모았다. 윤씨가 "작가의 내공과 고민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소설집"이라고 띄우자, 조씨는 "등단작처럼 날것의 뭔가가 느껴졌다"고 맞장구쳤다. 최근 문학상 2개를 연달아 받으며 상승세를 탄 정씨는 셋째 딸까지 얻어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권씨가 "내가 삼남매 막내딸인데 서로 화목하고 좋다"고 격려하자, 정씨는 "상금 받으면 월세를 전세로 바꿀 예정"이라고 답했다.

단편집 '사십사'의 백가흠(42)씨는 테이블 끝에서 조용히 갈비를 씹고 있었다. "두 달간 그리스를 여행하다 지난주 귀국했더니 한식(韓食)이 당긴다"면서 "귀국과 동시에 좋은 선물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냉혹한 문체로 인간의 그늘을 탐구해 온 백씨는 "40대가 되면서 무감각해지고 허위에 능수능란해지는 인간의 변화가 자꾸 보인다. 점점 그냥 몸에서 툭 떨어져나오는 얘기를 쓰게 된다"고 했다. 백씨와 함께 문학잡지 '악스트'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정씨가 "비애감을 소설적으로 드러내는 데 선수"라면서 "인간 백가흠보다 문장 속 백가흠이 더 마음에 든다"고 속내를 드러내자 폭소가 터져나왔다.

한결같이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워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고 투덜대면서도, 다들 뭔가를 조금씩 써내려가고 있었다. 백씨는 그리스에서 쓴 짧은 소설 30편을 묶어 단편집을 낼 예정이다. 조씨는 단편집과 함께 내년쯤 프랑스계 입양아를 다루는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 윤씨는 '상냥한 남자'라는 제목의 장편, 정씨는 바닷속을 떠도는 인격체를 그린 SF적 장편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