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싸들고… 자율학습 중단하고… 곳곳서 '대피 행렬'

19일 오후 8시 33분쯤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1㎞ 지점에서 발생한 여진(餘震)에 전국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이번 지진은 지난 12일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던 곳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일주일 전 지진과 비교할 때 규모가 작아서 실제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380여 차례 이어졌던 여진이 잦아드는 시점에서 또다시 상당히 강도가 높은 지진이 일어나자 국민이 체감하는 '공포감'은 훨씬 더 컸다. 전국 각지에서 지진동(動)을 느낀 주민들이 일제히 집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진 발생 1시간여 만에 전국적으로 1만1000여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을 비롯해 진앙(震央)으로부터 300㎞ 떨어진 경기 북부에서도 진동을 느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주 부근에선 '지진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진 멀미는 자동차나 배를 탈 때 멀미 증세가 생기듯 지진으로 땅이나 건물이 흔들리면서 속이 울렁거리거나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경주에 사는 권모(50)씨는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토할 것 같았다"고 말했고, 백모(여·38)씨는 "불면증으로 처방받았던 수면 진정제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안전처 홈페이지 또 먹통

재난(災難)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안전처는 이번 여진에서도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5분이 지난 오후 8시 38분에 첫 긴급재난문자를 경주 지역에 발송했고, 오후 8시 41분에 다시 재난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부산·울산·경남지역엔 오후 8시 47분에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이날도 접속 불능 상태에 빠졌다. 안전처 홈페이지는 12일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3시간 동안 '먹통'이 됐다. 정부는 지난 14일 "정부종합전산센터가 홈페이지 처리 용량을 최대 80배까지 향상시켜 (위기 시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밝혔지만 불과 닷새 만에 일어난 이번 여진 직후 2시간 20여분간 접속이 되지 않았다.

◇전국서 '지진 멀미' 호소 잇달아

이날 진앙인 경주는 물론 부산·울산 등 영남 지역의 대도시에서 건물이 10초가량 흔들렸다. 경주시 내남면 부지 2리 박종헌(62) 이장은 "일주일 만에 또 지진을 겪은 주민들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집 밖으로 나와 자리를 깔고 앉거나 마을 회관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주부 김경란(44)씨는 "남편과 아파트 18층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지진 진동이 느껴져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다"며 "이미 아파트 밖으로 나온 이웃들이 떨면서 '이러다 정말 큰 지진이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프로야구 넥센-롯데전이 열린 부산 사직구장에선 경기를 중계하는 카메라가 지진에 흔들리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부산·울산·대구의 고등학교들은 자율학습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대구 도시철도는 지하철 운행을 수동으로 전환해 시속 45㎞ 이하로 서행한 뒤 다시 정상화했다고 밝혔다. 부산 도시철도 역시 지진 후 1분가량 서행을 하다 정상 운행을 했다. 현대자동차는 울산 공장 내 일부 생산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전업주부 김모(36)씨는 "집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등 부분에서 덜컹거리는 진동이 3초가량 느껴졌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집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좌우로 비틀리듯 서너 번 흔들려 어지럽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잇단 지진에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국이 지진 멀미에 시달렸던 셈이다.

한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지진 발생지 인근에 있는 신월성 원전을 비롯해 모든 원전이 정상 운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일 발생한 강진으로 수동 정지한 월성 원전 1~4호기는 이번 지진과 상관없이 정밀 검사를 위해 운전을 중단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