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새 앞에 아내는 울고 말았네

2014년 5월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전시장에 걸린 이중섭의 그림 '환희'(1955년) 앞에서 휠체어에 간신히 몸을 기댄 90대 노파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녀는 이중섭이 평생 그리워했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95) 여사였다.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만나 평생 배필로 삼은 여인, '남쪽에서 온 덕(德)'이라 하여 '이남덕'이라 이름 붙여주고 눈감는 날까지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그림 속엔 구름에 둘러싸인 불그스레한 태양을 배경으로 암수 새 한 쌍이 춤추고 있었다. "부군께서 일본으로 간 여사님을 그리워하면서 수탉과 암탉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더군요. 그 사연이 너무나 절절해 그림을 소장하게 됐답니다." '환희'의 소장자인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서울미술관 설립자)의 설명에 노파는 꾹꾹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10월 3일까지)이 이제 열흘 뒤면 막을 내린다. 어느 하나 곡절 없는 그림이 없지만 '환희'는 그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 손꼽힌다. 1955년 그림이 완성될 때 머문 이중섭의 시간에, 59년 뒤 아내 야마모토 여사의 시간이 덧입혀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1955년 대구 미국공보원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애절한 개인사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이중섭의 전통에 심취한 조형실험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분명 종이 위에 그린 유화인데 마치 점돌 위에 그린 듯 질감이 텁텁하다. 빛바랜 듯한 색감을 표현하려 물감을 두껍게 몇 겹씩 바르고 충분히 말린 다음 긁어낸 흔적도 보인다. 오래된 고분 벽화의 일부를 뚝 떼어 박물관에 진열한 것만 같다.

실제로 고구려 고분 벽화는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술사가인 최열씨는 "이중섭이 평양 종로공립보통학교 시절 평양부립박물관에 재현된 강서고분 벽화를 보며 신비로 가득한 고대 왕국의 전설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며 "그 같은 몽환의 경험이 이중섭 예술 세계의 토대를 이뤘다"고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이중섭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새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 나오는 주작(朱雀)을 연상케 한다"며 "특히 '환희'의 경우 흙의 질감을 살려 표현함으로써 고분벽화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 작품"이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6년 10월 3일까지]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수·토 오전 10시~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