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음성 통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통화 자체를 두려워하는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족(族)이 늘어나고 있다. 주로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일상적인 대화를 통화가 아닌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나눈 10~20대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4년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 목적으로 '채팅·메신저'(79.4%·복수 응답 가능)를 꼽은 사람이 '음성·영상 통화'(70.7%)보다 많았다
프리랜서 작가인 조모(여·31)씨는 음성 통화를 한 번 하는 데 10분 이상 준비 시간이 걸린다. 수첩이나 컴퓨터에 자신이 할 말을 대본처럼 미리 적어 놓아야 그나마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중요한 전화이거나 상대와 말다툼이 예상되는 대화의 경우엔 '저쪽에서 이렇게 말하면 나는 이런 식으로 대꾸한다'는 식으로 '통화 알고리즘'을 짜기도 한다. 조씨는 "대부분 대화를 평소 메신저로만 하다 보니 통화를 하는 데 익숙지 않아 항상 어색하다"며 "나중에 못한 말이 생각날까봐 미리 준비를 해놓고 전화를 한다"고 했다.
'콜 포비아'로 인해 노장청(老長靑) 세대가 갈등을 겪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한 중견기업 재무팀에서 일하는 장모(44)씨는 사무실로 전화가 올 때마다 후배 사원들에게 짜증을 낸다. 20~30대 직원 3명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전화가 걸려오면 선뜻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장씨는 "옛날엔 막내급 사원이 반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요즘엔 서로 눈치만 본다"고 했다. 반면 젊은 사원에게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회사 전화는 '공포'다. 재작년 취업한 직장인 강진영(30)씨는 "발신지가 뜨는 휴대 전화와 달리 회사 전화는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야 하니 언제나 긴장된다"며 "취업 이후 '내가 대화하는 기술 자체가 부족했구나'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젊은 직장인을 겨냥해 '전화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스피치 학원에서는 '전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전화 매너도 가르치지만 '전화를 겁내지 않는 법'을 물어보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이 학원 원장 박모(36)씨는 "과거엔 영업사원 등 전화가 필수인 직장인이 많이 찾았다면 요즘엔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30대가 주로 찾는다"고 했다.
옛날과 달리 일상생활을 하는 데 음성 통화 없이도 불편을 겪지 않아 '콜 포비아'가 생겨났다는 지적도 있다. 음식 배달부터 생필품 구입까지 모두 인터넷이나 모바일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보니 통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자취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이정수(27)씨는 "부모님 안부 전화를 빼면 최근 1분 이상 길게 통화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다른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데 '굳이 통화만이 답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