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학생에게 '빚' 대신 '빛'을 허하라
입력 : 2016.09.30 23:36
취업난 최악에도 학자금 대출 12조 "대출받아 대학간다" 허구성 비판
대학·대학원생 25명 밀착 인터뷰 '부채세대'의 생생한 증언 담아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 지음｜사이행성｜288쪽｜1만3800원
부녀(父女)의 이 대화 때문이었다.
"너는 대체 얼마나 빚을 졌길래 맨날 빚 갚아야 한다는 소리만 하냐" "아버지, 저는 지난 10년 동안 대학과 대학원에 있었습니다. 대학 등록금만 3000만원, 대학원 등록금은 2000만원. 입학금까지 합치면 5000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딸은 말을 잇는다. "가진 것도 없는 제가 그 와중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그나마 학자금 대출을 2200만원만 받았는데, '뭐하러 대출을 2000만원이나 받았냐'고 물으실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고, 우리 딸이 2000만원밖에 대출을 받지 않았구나, 기특하고 장하다'라고 칭찬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2016년을 살고 있지만, 아버지와 자식 세대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자식 세대인 딸은 이 책의 필자 천주희(30)씨. 청년 세대에게 화제를 모았던 '노오력의 배신' 공동 저자이자,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로 연세대 문화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다. 건조하게 요약하면 이 책은 '학자금 대출 12조 시대'에 한국 대학(원)생의 빈곤과 채무에 관한 보고서. 하지만 엄살이나 증오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당사자 세대 25명의 밀착 인터뷰를 통한 차분한 설득과 비판이라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특히 "우리 때도 빚내서 대학 갔지만 우는소리 하지 않았다"고 못마땅해하는 기성세대에게 일독을 권한다.
부녀(父女)의 이 대화 때문이었다.
"너는 대체 얼마나 빚을 졌길래 맨날 빚 갚아야 한다는 소리만 하냐" "아버지, 저는 지난 10년 동안 대학과 대학원에 있었습니다. 대학 등록금만 3000만원, 대학원 등록금은 2000만원. 입학금까지 합치면 5000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딸은 말을 잇는다. "가진 것도 없는 제가 그 와중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그나마 학자금 대출을 2200만원만 받았는데, '뭐하러 대출을 2000만원이나 받았냐'고 물으실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고, 우리 딸이 2000만원밖에 대출을 받지 않았구나, 기특하고 장하다'라고 칭찬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2016년을 살고 있지만, 아버지와 자식 세대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자식 세대인 딸은 이 책의 필자 천주희(30)씨. 청년 세대에게 화제를 모았던 '노오력의 배신' 공동 저자이자,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로 연세대 문화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자다. 건조하게 요약하면 이 책은 '학자금 대출 12조 시대'에 한국 대학(원)생의 빈곤과 채무에 관한 보고서. 하지만 엄살이나 증오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당사자 세대 25명의 밀착 인터뷰를 통한 차분한 설득과 비판이라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특히 "우리 때도 빚내서 대학 갔지만 우는소리 하지 않았다"고 못마땅해하는 기성세대에게 일독을 권한다.
벌어진 격차에는 이유가 있다. 대략 90년대까지는 '우골탑의 시대'로 불렀다. '소 팔아서 대학 보낸다'. 집안 살림 거덜나더라도 "너 하나는 공부시키겠다"던 부모의 결연한 의지 뒤에는, "너 졸업하면 우리 집안 고생은 끝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고성장 한국 사회에서 그 믿음은 자주 현실이 되었으니까. 동년배의 20~30%만 대학을 가던 시절이었고, 대학 졸업장을 받기 전에 대기업이 먼저 러브콜을 보냈으며,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몸집과 이익이 동시에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받아 대학 가는 시대. 집안에 돈이 없어도, 팔 소가 없어도, 웬만한 대학생에게는 '한국장학재단'이 신용으로 돈을 빌려 준다. 얼핏 들으면 좋아할 일인 듯싶다. 문제는 대학생이 전혀 귀하지 않은 세상이며, 소위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 취업이 힘든 '내리막 성장'의 시대라는 것. 직장 월급으로 빌린 학비 갚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꿈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 빚을 갚을 수는 있다. 문제는 월 150만원 안팎의 비정규직 일자리로는 원금과 이자 갚기에도 빠듯한 인생이라는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부와 은행만 좋은 일 시켜주는 '채무'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천주희의 고백은 이러하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서울 가던 날 1000만원을 신입생 등록금 겸 '독립 자금'으로 주셨지만, 이후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1학년 2학기 때 첫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래, 석사 마칠 때까지 8차례에 걸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예외적 사례로 보일지 모르지만, 소위 '흙수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 자녀 복지제도가 있는 기업에 근무하는 가장(家長)이 아니라면, 중산층이라도 '1000만원 등록금 시대'를 돌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 책에는 수많은 숫자와 도표가 등장한다. 대학별 한 학기 등록금, 월세, 교통비, 식비, 통신비, 참고서 구입비, 이달 연체 금액, 서울 지역 대학생 빈곤화 지수,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규모 및 증가율 등등. 하지만 이런 건조한 수치나 그래픽보다 체온을 올리는 열원(熱源)은, 이 청년들이 직접 겪은 삶의 고백들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학자금 대출은 '복지'나 '시혜'가 아니라 갚아야 할 '빚'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빚' 대신 '빛'을 허하라고 외친다. 저자의 대안은 뭘까. 단순히 이자율을 낮추거나 학자금 대출 규모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무상교육을 실시하라는 '당돌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유효하려면 대학 구조조정 같은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또 출산율과 진학 인구 감소로 대학 지형도가 급변할 차후 10년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대안은 섣부르다는 비판을 피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기성세대와 해당 부서 관료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얻기도 전에 부채로 시작해야 하는 2016년의 청년 세대. 그들의 불안정한 노동과 대학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모두 대학에 가야 한다" "젊은 놈들이 패기가 없어" "학비는 취직해서 갚으면 된다"라고 믿는 당신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받아 대학 가는 시대. 집안에 돈이 없어도, 팔 소가 없어도, 웬만한 대학생에게는 '한국장학재단'이 신용으로 돈을 빌려 준다. 얼핏 들으면 좋아할 일인 듯싶다. 문제는 대학생이 전혀 귀하지 않은 세상이며, 소위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 취업이 힘든 '내리막 성장'의 시대라는 것. 직장 월급으로 빌린 학비 갚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꿈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 빚을 갚을 수는 있다. 문제는 월 150만원 안팎의 비정규직 일자리로는 원금과 이자 갚기에도 빠듯한 인생이라는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부와 은행만 좋은 일 시켜주는 '채무'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천주희의 고백은 이러하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서울 가던 날 1000만원을 신입생 등록금 겸 '독립 자금'으로 주셨지만, 이후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1학년 2학기 때 첫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래, 석사 마칠 때까지 8차례에 걸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예외적 사례로 보일지 모르지만, 소위 '흙수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 자녀 복지제도가 있는 기업에 근무하는 가장(家長)이 아니라면, 중산층이라도 '1000만원 등록금 시대'를 돌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 책에는 수많은 숫자와 도표가 등장한다. 대학별 한 학기 등록금, 월세, 교통비, 식비, 통신비, 참고서 구입비, 이달 연체 금액, 서울 지역 대학생 빈곤화 지수,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규모 및 증가율 등등. 하지만 이런 건조한 수치나 그래픽보다 체온을 올리는 열원(熱源)은, 이 청년들이 직접 겪은 삶의 고백들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학자금 대출은 '복지'나 '시혜'가 아니라 갚아야 할 '빚'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빚' 대신 '빛'을 허하라고 외친다. 저자의 대안은 뭘까. 단순히 이자율을 낮추거나 학자금 대출 규모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무상교육을 실시하라는 '당돌한' 주장이다. 이 주장이 유효하려면 대학 구조조정 같은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또 출산율과 진학 인구 감소로 대학 지형도가 급변할 차후 10년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대안은 섣부르다는 비판을 피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기성세대와 해당 부서 관료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얻기도 전에 부채로 시작해야 하는 2016년의 청년 세대. 그들의 불안정한 노동과 대학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모두 대학에 가야 한다" "젊은 놈들이 패기가 없어" "학비는 취직해서 갚으면 된다"라고 믿는 당신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