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부러져도 사람은 놓치지 않았다

"파도가 온다! 몸을 숙여라!"

18호 태풍 차바가 몰고 온 집채만 한 파도가 남해안을 강타한 5일 오전 9시. 전남 여수시 오동도 방파제에서 신승용(44) 여수해양경비안전서 122 구조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풍랑에 떠밀려 표류한 여객선 미남크루즈호(1321t급)에 타고 있던 승무원 6명을 방파제 위쪽으로 구조한 직후였다. 구조대원 7명과 승무원 6명은 초속 34m의 강풍이 불어닥치는 방파제를 빠져나와 해안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번의 큰 파도를 간신히 버티고 다시 앞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세 번째 파도가 이들을 집어삼켰다. 여객선장 주모(57)씨와 선원 김모(61)씨 등 승무원 2명과 박정채(42) 경사, 박창용(39) 경사, 김명동(38) 경장, 이세종(32) 경장 등 구조대원 4명이 파도에 휩쓸려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긴박한 그 순간, 신 대장이 강성찬(35) 경장, 유진호(30) 경장 등 방파제 난간을 붙잡고 있는 구조대원 2명에게 "구조용 밧줄을 바다로 내려라"고 외쳤다. 바다 위에는 파도에 휩쓸린 4명의 구조대원이 2인 1조로 승무원 1명씩을 껴안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신 대장은 바닷속 대원들에게 "헤엄쳐. 밧줄 잡아"라고 목이 쉬어라 외쳤다. 물에 빠진 대원들은 승무원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방파제 벽면에 설치된 철제 사다리를 타고 방파제 위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오전 9시 9분쯤이었다.

방파제 위에 있던 신 대장과 대원 2명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동료들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박정채 경사는 "흠뻑 젖어 있던 대장님 손에서 열이 펄펄 나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바다에 빠졌던 박창용 경사와 이세종 경장은 방파제 위로 올라온 뒤에야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파도에 휩쓸릴 때 방파제 난간에 부딪혀 왼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에 골절상을 입은 것이다. 박 경사는 "바다에선 몰랐는데 뭍에 오르고 나니 통증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병원에 이송됐고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나머지 대원들도 타박상 등 부상을 당했지만 간단한 치료만 받고 근무지로 복귀했다. 신 대장은 "20년간 바다에서 구조 활동을 했지만 이렇게 거센 파도는 처음 본다"며 "선원들과 동료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울산에서는 태풍으로 고립된 마을 주민을 구조하러 나선 119 구조대원이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울산 온산소방서 구조대 소속인 강기봉(30) 대원은 이날 낮 12시 10분쯤 울주군 청량면 회야댐 정수장 인근 마을로 출동했다. 태풍으로 회야강이 불어나면서 마을 주민 일부가 고립됐고, 구조대원 3명이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구조대원들이 마을 주택 옥상에 고립된 주민을 구하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던 중 강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강 대원이 물살에 휩쓸려 갔다. 다른 대원들은 전봇대 등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 몸을 돌보지 않은 대원들의 구조 작업 덕분에 고립됐던 마을 주민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 온산소방서 관계자는 "강 대원은 구조 현장에서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있어도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에 뛰어들던 용감한 대원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