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위안부·이승만… 서술따라 '역사전쟁' 회오리

중·고교 국정 역사 교과서의 집필 내용은 지난 1년 가까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왔다. 오는 11월 말 '현장 검토본'을 공개할 때까지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서다. 이 때문에 집필진(46명)과 심의위원(16명) 명단도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는 다음 달 말에야 알 수 있다.

현장 검토본이 다음 달 말 공개되면 기술된 내용은 물론 표현 하나하나를 두고 치열한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있는 교과서는 저부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 왔지만, 야당과 좌파 역사학계에서는 "국정교과서가 박정희의 산업화 업적을 강조하면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 등 그늘을 다루지 않거나 유신 독재를 축소해 서술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5·16 군사정변'을 미화하거나 민주화운동의 과정과 성과를 소홀히 다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과(功過)가 균형 있게 서술되는지도 관건이다. 현재 좌편향된 일부 검정교과서는 이승만의 공적에 대한 서술이 매우 적고 부정적인 내용 위주로 기술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출범이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 등을 놓고 벌어진 논란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2015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을 확정하면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국감에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홍보를 위해 만든 '올바른 역사교과서'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올라온 사실이 지적됐지만, 교육부는 "2015년 교육과정을 확정하기 이전에 논의됐던 시안이 잘못 올려졌다"며 지난달 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로잡았다.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그간 논란이 큰 '건국'이란 표현을 피하면서도 1948년이 대한민국의 출발점임을 확실히 명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교과서 집필진에게 '대한민국 수립'으로 서술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해 9월 이후 일관된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948년을 국가 수립으로 보는 것은 대한민국이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힌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군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서술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사다. 지난 2013년 '우파 교과서'로 불리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일본군위안부 사진 설명에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썼다가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뒤늦게 수정했다. 마치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동원된 것처럼 오독(誤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시기 고등교육 기관을 세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제와의 협력도 필요했다'고 서술해 "친일 행위가 불가피했다고 합리화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근현대사만 아니라 상고사·고대사 부분에도 뇌관이 적지 않다. 정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국정교과서에서 상고사·고대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예컨대 지난해 9월 발표한 '2015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을 통해 "고구려와 수, 고구려와 당의 전쟁을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변동과 관련해 그 배경과 전개 과정, 의의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해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닌 우리 땅임을 명확히 규정하기로 했다. 국정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또 역사학계에서 아직 공인받지 못한 내용이나 실증적인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재야 사학계의 주장이 실릴 경우에도 큰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왕검성이나 한사군의 위치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 한 관계자는 "'통일신라와 발해 시대'와 '남북국 시대' 가운데 어느 표현을 쓸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역사학자는 "어차피 국정 역사 교과서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다수 국민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면 큰 논란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집필진과 심의위원들이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만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