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가볍게 쓱~ 읽어주세요"

독립문예잡지 제작에 뛰어든 2030세대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행사 중 하나로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열린 좌담회. 작년 4월 첫 삽을 뜬 '더 멀리' 김현(36) 시인, 작년 11월 창간한 '애널리얼리즘' 이상우(28) 소설가, 지난 2월 첫 호를 낸 '눈 치우기' 유희경(36) 시인이 모여 속 얘기를 털어놨다.

시작은 대형 출판사가 출간하는 기존 문학 계간지에 대한 반발이었다. "오랜 시간 너무 형식적으로 고착돼왔다"는 유씨의 지적에, 이씨는 "아무도 읽지 않으니 문제"라고 했다. 김씨는 "최대한 가볍게 버스나 화장실에서 쓱 읽고 마는 잡지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시인이 쓰는 '그 시절 내가 좋아한 아이돌' 특집 등 장르 규정을 거부하는 '잡스러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돌출과 함께 기성 문단도 혁신의 가속을 붙였다. 격월간 '악스트'(은행나무), '릿터'(민음사) 등 거대 출판사가 새 잡지를 창간했고, 거의 모든 계간지가 '혁신호'를 부르짖고 있다. 유씨가 "바뀔 때가 됐다고 모두가 생각할 때쯤 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며 "핵심 독자층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서로 시너지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씨는 "'혁신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내가 원하는 건 없었다"면서 "외국 젊은 작가들이 경제와 지성, 성 담론 등 전 지구적 양상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1000부를 펴낸 '애널리얼리즘'(350만원)을 제외하면, 두 잡지는 500부 정도를 찍고 100만~250만원 수준의 제작비를 들인다. 디자인 등을 알음알음 자족해 가능한 "기적적인 비용"이지만 결과는 소박하지 않다. 등단과 비등단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글쓰기와 장르적 실험이 지면을 메운다. 매회 제작비 100만원 미만으로 꾸려나가는 '더 멀리'의 경우 정기 구독자가 140명, 벌써 11호까지 준비 중이다. 김씨는 "제작비 떨어질 때까진 낼 거다. 망하든 않든 우리만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이게 경쟁의 무기"라고 했다.

잡지의 생명이 '꾸준함'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으나 김씨는 "단 1회에 그치더라도 일단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자 100명만 있으면 된다. 그들만의 기관지처럼 느껴지더라도 존재 의의는 있다." 이들의 얘기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더 멀리'는 다음 달 신간이 나오고, 최근 마감을 끝낸 '눈 치우기'는 필진이 15명으로 늘었다. '애널리얼리즘'은 더 큰 파격으로 나아간다. "잡지가 꼭 텍스트일 필요 없잖아요. 프랑스 리옹에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계획이에요." 환호성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