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과 노는 모습에 반해… '마더 박' 위한 칸타타 썼죠"

"맘에 드세요?"

지난주 서울 관악구 김문환(72) 서울대 미학과 명예교수의 아파트. 박청수(79) 원불교 원로교무는 초청장을 건네며 김 교수에게 문구(文句)에 대한 품평을 물었다.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칸타타-맑을 淸 빼어날 秀' 초청장이다. 박 교무와 김 교수는 각각 이 칸타타 공연의 주인공과 작사가다. 김 교수는 '서시(序詩)'를 시작으로 '어머니' '출가' '고통받는 사람들' '떨쳐나서리라' 등 모두 10편의 시(詩)를 썼다. 열아홉에 원불교 교무가 된 이후 전 세계 55개국에 105억원어치를 지원하면서 학교 9곳과 병원 2곳을 지어주며 봉사해온 박 교무의 평생을 담았다. 작곡가 이연씨가 여기에 곡을 입혀 칸타타로 태어났다.

이들은 작년까지는 서로 마주 앉아 차(茶) 한잔 나눈 적 없는 사이다. 김 교수는 원불교와도 아무 인연이 없었다.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경동교회 다녔고, 성공회 사제가 된 딸(김기리 사제) 따라 성공회로 옮긴" 개신교 신자다. 첫 인연은 2005년 2월, 경기 의왕의 한센인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 30주년 기념 잔치'였다. 김 교수는 강원용 목사와 함께 현장에 갔다가 진풍경을 목격했다. 흰 저고리 검정 치마의 한 여성이 한센인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덩실덩실 추는 것이 아닌가. 박 교무는 1975년 성 라자로 마을이 생길 때부터 매년 이곳을 찾아 한센인들과 '함께 놀아온' 사이였다.

"종교 간 대화모임에서 박 교무님과 오래 만나온 강 목사님도 '박 교무가 저런 면이 있었나?'하고 놀라시더군요. 그런 모습 처음 본 저야 어땠겠어요?"(김 교수)

김 교수는 궁금증이 일어 박 교무의 저서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 등을 구해 읽었다. "우리는 마더 테레사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곁에 '마더 박'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짝사랑(?)'이 시작됐다. 그해에 칸타타 가사가 될 시를 적어 박 교무에게 보냈다. 김 교수가 칸타타 원고를 쓴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 인물이나 제주 여장부 김만덕 같은 역사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내가 느낀 감동을 남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으시더군요."(김 교수) "물론 고마웠지만 저는 저대로 당황했죠. 당시 현역이었는데 제 일생을 가지고 칸타타라니요…."(박 교무)

그렇게 10년이 흘러 두 사람은 은퇴했고 칸타타는 잊었다. 작년 발간된 박 교무의 자서전 '박청수-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세상 받든 이야기'(열화당)는 김 교수의 기억 속에서 칸타타 원고를 깨웠다. "박 교무님도 팔순이고, 원불교 역시 100주년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옛 원고를 수정해서 다시 보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10년 만에 완성된 칸타타는 지난 6월 원불교 중앙총부가 있는 전북 익산에서 첫 무대를 가졌다. 김 교수는 건강이 좋지 않아 공연장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번 서울 공연을 기대하고 있다. 합창을 맡은 '음악이 있는 마을'은 지휘자 홍준철씨를 비롯해 단원들 다수가 성공회 신자다. 김 교수는 "종교 간 화음(和音)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18일 공연은 종교 울타리를 넘어 문화예술계의 잔칫날이자 '박청수 팬클럽 모임'이 될 것 같다. 이인호 KBS 이사장, 이기웅 열화당 대표,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 김효선 여성신문사 사장,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이 공동 초청인이다. 칸타타 공연 후에는 박 교무 수필집 '박청수―세상 나든 이야기'(열화당) 출판기념회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