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은 킬러, 배꼽을 들었다 놨다 하네

지저분한 걸 못 참는 냉혹한 킬러 형욱(유해진·사진)은 우연히 동네 목욕탕에서 무명 배우 재성(이준)과 마주친다. 인생이 지지리도 안 풀리는 재성은 '죽을 때 죽더라도 씻고 죽자'며 온 참이다. 마침 목욕탕에 들어서다 비누를 밟고 뒤로 넘어져 정신을 잃은 형욱. 재성은 그 틈을 타 형욱과 자신의 목욕탕 키를 바꿔 도망친다. 넘어진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킬러는 자신이 무명 배우라고 믿고 성공하려 최선을 다하고, 무명 배우는 킬러 집으로 찾아가 그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두 사람의 인생이 얽히고 꼬이며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다시 만든 영화 '럭키'의 영문 제목은 'Luck-Key'다. 우연히 바꿔친 목욕탕 열쇠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되는 '행운의 열쇠'가 된다는 의미. 이런 만화적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노리는 것은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치밀함이 아니라 관객의 폭소다. 진지할 때 더 큰 웃음을 주는 배우 유해진은 맞춤옷을 입은 듯 관객을 쥐었다 놨다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분식집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칼솜씨를 발휘해 단무지로 꽃을 조각하고, 단역으로 일하러 간 드라마 촬영장에서 몸에 밴 액션 연기로 주목받는다. 이 만화 같은 상황 전개가 설득력을 얻는 건 오로지 배우 유해진의 힘이다.

유난히 센 영화가 많았던 올해, 오랜만에 만나는 유쾌하고 순진한 영화라 반갑다. "해피엔딩을 믿느냐"고 묻자 유해진은 "다들 그러길 바라며 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럼에도 인생에 대해 'yes'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113분간 마음 푹 놓고 깔깔 웃으며 해피엔딩을 믿어 보고 싶은 관객을 위해. 13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