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다 광기 보인다고? 내가 미친 사람이니까"

"전쟁터에서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질 때 누군가는 도망치지만 누군가는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뛰어가죠. '비니'는 적진으로 돌격하는 쪽이에요."

1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배우 마일스 텔러(Miles Teller·29)는 "내게도 연기는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것, 안전지대 밖으로 뛰쳐나가 광야에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텔러는 영화 '위플래쉬'(2014)에서 피 흐르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재즈 드럼을 두들겼던 바로 그 배우다. '위플래쉬'는 국내에서 미국 현지와 맞먹는 16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번엔 전설적 복서로 출연한 영화 '블리드 포 디스(Bleed For This)' 주연으로 부산에 왔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재기를 이룬 복서로 손꼽히는 '비니 파지엔자'의 실화. 챔피언이 된 뒤 교통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평생 걷지도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초인적 의지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해 다시 복싱 왕좌에 오른 선수다.

12일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상영 뒤 텔러를 만났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광기'가 보인다"고 하자 그는 "그건 내가 미친 사람(crazy person)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고난을 극복하는 하류 인생에 늘 끌려요. 이번엔 비니의 의지와 열정에 끌렸어요. 살다 보면 '너는 못 할 거야' '이건 불가능해' 이런 말 듣잖아요? 거기서 멈춘다면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을 떠날 수 없겠지요. 미친 것처럼 보여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텔러는 "내겐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연기를 할 땐 늘 긴장하고 초조해진다. 뭔가 망칠까봐 두려워하는 것,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초조함과 두려움이 나를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했다.

복싱은 생사(生死)를 담은 스포츠다. 절박한 상황에서 링에 오르는데, 가진 것은 손에 낀 글러브뿐이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하지만 제대로 펀치를 꽂아 넣기란 쉽지 않고, 그럴 수 있는 기술을 닦은 자만이 살아남는다. 텔러는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이 많은 챔피언 비니를 만나 조언을 들었다. 두 체급을 올렸던 비니를 연기하기 위해 10㎏을 뺐다가, 2주 반 만에 다시 10㎏을 찌웠다.

그는 "18년간 슈거 레이 레너드를 훈련시켰던 코치에게 고강도 훈련을 받았다. 영화를 준비한 여덟 달 동안 매순간 비니라는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했다"고 했다. 하루 13시간 동안 링 위에 선 적도 있었다. 텔러는 "고통을 참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가드를 올려도 13시간을 두들겨 맞으면 온몸이 아프다"고도 했다.

영화는 '록키' 시리즈 같은 고전적 권투 영화의 관습을 적절히 차용하면서도 현대적인 앵글과 촬영 기법을 영리하게 섞어 놓았다. 전설적 복싱 영화 '분노의 주먹'(Raging Bull·1980)을 만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조언했다. 텔러는 "스코세이지 감독이 '큰 도전이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다'고 말해줘 큰 힘이 됐다"며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힘이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비니는 여섯 살 때 영화 '록키'를 보고 부모님께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대요. '성공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지 마세요. 힘든 상황에 부닥칠 때, 눈앞의 문제가 너무 커 보일 때, 닫힌 문을 열어젖히고 불가능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영화가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2017년 2월 국내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