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같이 타고가도 돼요?

지난 추석 연휴에 KTX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주부 김모(35)씨는 세 살배기 딸을 달래느라 잠시도 쉬지 못했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중년 여성이 천 가방에 넣어 데리고 탄 요크셔테리어가 낑낑대며 짖어대자 딸이 기겁하고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은 "우리 아기(강아지)가 갑갑해서 그런다"며 가방에서 강아지를 꺼내 무릎에 앉혔다. 김씨가 "강아지를 가방에 좀 넣어 달라"고 부탁하자 "우리 개 안 물어요. 털도 안 날리는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가 승무원을 불렀지만 "다음부터는 강아지를 운송 용기에 넣어서 타셔야 한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 결국 김씨는 우는 딸을 안고 객실 연결 통로로 나가 서 있어야 했다. 그는 "강아지를 데려온 사람이 나가야지 왜 아이 엄마가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니냐"고 했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1000만명에 달하면서 열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운송 용기에 넣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갈등이 생기고 있다.

반려동물 운송 규정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재 항공사들은 '반려동물(개·고양이·새)과 운송 용기의 무게를 합쳐 5㎏ 이하인 경우에만 기내로 동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운송 용기 규격도 '가로·세로·높이 길이의 합이 115㎝ 이하이고 높이가 최대 21㎝ 이내로 앞 좌석 아래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정해져 있다. 만일 무게가 5㎏을 초과하면 수하물 칸으로 부쳐야 한다.

항공사를 제외한 다른 교통수단은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한국철도공사 여객운송약관에 따르면 열차 이용 시에는 '객석 폭보다 작은 용기에 넣은 동물'만 가지고 탈 수 있다. 그러나 용기의 크기나 무게에 대한 규정은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도 마찬가지로 '작은 용기에 넣은 동물은 데리고 탈 수 있다'는 규정만 있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는 '위협감을 주는 큰 동물을 데리고 탄 것이 적발될 경우 휴대 금지 물품으로 간주돼 5400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어떤 크기가 '큰 동물'에 해당하는지 명시돼 있지 않아 실제 처벌은 어렵다"고 말했다.

규정을 지킨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싫어하는 다른 승객들과 분쟁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세 살짜리 푸들 강아지 '사랑이'를 데리고 광주광역시로 가는 고속버스를 탄 직장인 이모(여·33)씨는 한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이씨는 옆좌석 승객 눈치를 보기 싫어 아예 강아지용으로 한 자리를 더 끊었다. 그런데 이를 본 할아버지가 "사람 탈 자리도 없는데 개XX를 데리고 타냐"며 '미친X'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이씨가 "규정에 맞게 용기에 넣으면 데리고 탈 수 있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반려동물 문화가 일찍 정착된 선진국은 이런 분쟁을 피하기 위해 운송 규정을 명확히 정비했다. 스웨덴은 지하철에 반려동물 전용칸을 만들어 13크로나(약 1900원)의 요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지하철은 운송 용기에 담은 소형 반려동물은 무료지만 대형견은 1.7 유로(약 2300원)의 운임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유럽 국가들은 반려동물이 대중교통에 탈 때 짖지 못하도록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 동물 보호 단체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은 5가구 중 1가구꼴로 급증했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는 여전히 느리다"며 "반려동물 운송약관 등을 명확하게 정비해서 혼란과 갈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