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못 타도 괜찮아, 하루키니까

일본에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사진〉의 열성 독자를 '하루키스트'(Harukist)라고 부른다. 일본 언론은 '하루키스트'들이 올해 노벨문학상이 미국 팝 가수 밥 딜런에게 돌아간 뒤 실망하면서도 내년을 기약한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선정한 13일 밤 '하루키스트' 100여명이 센다가야 지역의 하토노모리하치만 신사(神社)에 모여 발표를 기다렸다고 전했다. 센다가야는 무라카미가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에 재즈 카페를 운영한 곳이라 해마다 노벨상 발표일엔 일본 전역의 '하루키스트'들이 모여든다. 독자들은 "무라카미가 수상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늘 그랬듯이 나는 그의 책을 읽을 것"이라거나 "밥 딜런은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니까 괜찮다"며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일본 영화평론가 쇼지 카오리는 15일 재팬 타임스에 발표한 칼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못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아'를 통해 "무라카미가 존경하는 미국 작가들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존 어빙, 레이먼드 챈들러, J.D 샐린저, 레이먼드 카버 모두 노벨상을 안 받았다"고 썼다.

쇼지는 일본 문단에서 이미 노벨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비평가들이 '무라카미는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는 분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오에가 '무라카미 소설은 사회 전체를 다루는 적극적 태도를 갖추지 않은 채 대중문화에 휩쓸리려는 수동적 의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는 것. 그러나 쇼지는 "무라카미가 없었다면 일본 소설은 여전히 영혼 탐구와 자발적인 엄숙함에 짓눌리거나 가족과 전통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도박 사이트 래드브록스는 해마다 50개 언어로 번역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쳐왔다. 일본에선 10월 초마다 대형 서점에 '하루키' 코너가 설치돼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지난 6일 신중히 전망했다. 이 신문은 스웨덴에 살면서 무라카미 소설을 현지어로 번역한 언론인 유키코 듀크의 말을 인용했다. 그녀는 "이곳 스웨덴의 공통된 의견은 무라카미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작가이긴 하지만, 노벨상을 받을 만한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재능 있는 작가지만, 좀 너무 가볍고, 좀 너무 많이 쓴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한편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9일 베를린에 온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인터뷰 기사를 인터넷에 올렸다. 무라카미는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그것은 내게 과분하다"며 "독자들이 내 소설을 좋아해서 나는 행복하고, 모든 형태의 포상은 내게 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30일 덴마크에서 안데르센 문학상을 받는다. "무라카미는 전통 서사와 팝 컬처, 일본 전통, 꿈 같은 리얼리즘, 철학 토론을 과감하게 뒤섞었다"는 게 선정 이유다. 무라카미는 체코의 카프카 문학상, 독일의 디벨트 문학상 등을 이미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