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판사, 법조비리 극복에 도움 될까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재판을 하고 변론하는 '알파고 판사' '알파고 변호사'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이 18일 국내외 미래학자들과 법조인들을 초청해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사법부의 미래를 논의하는 '2016 국제법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날 행사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공언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회장이 기조연설을 한다. 슈밥 회장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 첨단산업이 융합해 인류의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학자다.

대법원이 이번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은 이미 인공지능이 법조(法曹)의 영역을 넘볼 정도의 기술력을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2030년까지 판사라는 직업이 인공지능에 밀려 사라질 확률이 40%라고 분석했다. 이미 미국에선 인공지능 변호사가 과거 판결문과 소장을 분석해 승소 확률을 제시하고, 미국의 한 IT 업체가 개발한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는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도 했다. 독일은 범죄 데이터를 분석해 범인의 도주 경로 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국제법률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방한한 오렌 에치오니(Oren Etzioni) '앨런 인공지능' 연구소장과 로만 얌폴스키(Roman Yampolskiy) 미국 루이빌 대학 교수는 1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사법부의 미래상에 대해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놨다. 미국 IT기업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의 기술 자문 위원을 맡고 있는 에치오니 소장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반면 얌폴스키 교수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간에 대한 로봇의 공격과 지배가 현실이 될 수 있다며 인공지능의 발달을 '악마의 소환'에 비유할 정도로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학자다.

에치오니 소장은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며 "판사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에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 설문을 해보니 '향후 25년 안에는 인공지능이 법률가를 대신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며 "법조계에서 인공지능은 매우 제한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인공지능은 소송 자료와 판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집해 판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터미네이터 같은 할리우드 영화와 현실은 구분돼야 한다. 인공지능은 사법부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은 법조 비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다. 학연·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 자료로만 법률적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얌폴스키 교수는 "장기적으로 인공지능이 판사의 역할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인종·성별·외모 등에 대한 편향된 정보가 주입되면 인공지능 판결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단기적으론 인공지능이 자료 검색 등을 용이하게 해 법조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멀리 보면 법조계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돼 법률가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만약 인공지능이 해킹 집단 등에 이용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가 생길 것"이라며 "인공지능은 생화학무기, 인간복제만큼 위험하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한국에서처럼 학연·지연 등에서 비롯되는 법조 비리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특정기업의 지원을 받아 개발된 인공지능은 또 다른 방식의 편향된 판결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의견이 일치한 분야는 부동산과 같은 재산분쟁 사건에서 인공지능 판사의 적용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판례를 단시간에 분석·검토해 시간과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