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왕훙' 하나, 2000만 중국인 사로잡다

"서울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시겠어요?"

지난 8일 서울을 찾은 중국인 '파워 블로거' 캔디 선윈페이(Candy沈韻菲)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박 시장은 "무조건 즐기면 되는 곳"이라고 답하면서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과 서울 불꽃축제를 꼭 가보라고 강력 추천했다. 팔로어 30만명을 거느린 캔디 선윈페이가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생중계한 이 방송을 15만명 가까운 팬이 시청했다.

전국 지자체가 '왕훙(網紅) 모시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왕훙은 '온라인 유명 인사'를 뜻하는 왕뤄훙런(網絡紅人)의 줄임말. 웨이보나 메신저 위챗 등에서 활동하며, 관심사에 따라 패션·화장품·가구 등을 체험하고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직접 판매까지 한다. 적게는 30만명부터 많게는 수천만명까지 팔로어(팬)를 거느린 이들이 6억명에 달하는 웨이보 이용자에게 미치는 '소문 마케팅' 효과는 엄청나다. 중국 온라인 생방송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왕훙 경제' 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2000만명이 본 왕훙의 서울 방문기

서울시는 지난 17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막을 연 '서울패션위크'에 왕훙 2명을 초청했다. 시는 지난 2월 웨이보와 업무 제휴를 맺으면서 '서울의 패션'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전문 블로거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웨이보 측이 패션 전문 왕훙 2명을 추천했다. 팔로어 91만명을 거느린 패션·뷰티·여행 전문 블로거 저우샤오천 키키(周小晨kiki)와 유명인·패션쇼 사진을 올리는 팔로어 58만명의 마오스디디(猫屎弟弟)다.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는 두 사람은 웨이보를 통해 서울패션위크 패션쇼 무대와 동대문 새벽시장을 생중계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섭외비 없이 체류 비용과 취재 일체만 지원하는 조건으로 초대했다"고 밝혔다.

왕훙들은 지난 5월과 8월에도 연남동 연트럴파크, 신사동 가로수길 등을 찾아 웨이보를 통해 서울을 알렸다. 지난 두 번에 걸친 '왕훙 방문기'는 웨이보 메인 화면에 걸려 2000만건이 넘는 클릭 수를 기록했다.

◇왕훙 앞세운 지자체 홍보전 러시

강원도는 지난 16일 팔로어 370만명에 달하는 왕훙 수수를 초청해 강릉·인제·홍천·철원 등 5개 시군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강원도는 "사업비 2억원을 책정했으며 왕훙의 체류비와 SNS 게시 비용을 별도로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부터 이런 행사를 준비했는데, 그때는 방문하기로 한 왕훙이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입장이 난처하니 연기하자"고 통보해 일정을 미뤘다.

대구시는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왕훙 2명을 초청해 대구의 전통시장 먹거리와 동성로 쇼핑 거리 등을 웨이보에 게시하게 했다. 22일에는 왕훙 8명을 더 초청해 대구 관광 홍보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초청 비용은 전액 대구시가 부담한다.

전라북도는 지난 4월 왕훙과 중국 산악 동호회원을 초청해 지리산과 마이산 등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부산시·울산시·경상남도가 함께 운영하는 동남권관광협의회는 지난 6월 말 웨이보의 모(母)회사인 중국 포털 사이트 '시나닷컴'의 편집장과 왕훙 등 4명을 초청해 산청 동의보감촌, 김해 가야테마파크,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해운대 등 경남 일대를 둘러보게 했다. 인천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왕훙을 초청해 시 홍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