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묻고 시인이 해석합니다

"성성하게 굽이진 목젖 위에서 잠든 울음을 요분질한다…."

강정 시인이 본인의 시 '호랑이 감정'을 소리 내 읽었다. 지난 13일 서울 한국문학번역원 도서관. 동석한 프랑스 시인 3인의 질문이 쇄도했다. "이 단어는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여성의 음란한 성적 몸짓을 일컫는 '요분질'에 이르러 시인끼리 격론이 붙었다. 욕설에 가까운 저속한 프랑스어가 잇따라 제기됐다. "Oui, d'accord(이제 알겠어요)!" 결국 운율과 의미를 고려해 'ses fesses(그녀의 엉덩이)'로 낙점. 이날 시인들은 식사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워가며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시 한 편에 매달렸다.

듣고, 질문하고, 파헤치고, 해석한다. 시인에 의한 토론식 시 번역. 한국의 강정·박상순·이기성, 프랑스의 기욤 파야르·안느 포르투갈·피에르 파를랑이 참여한 '한·불 시인 공동 번역 아틀리에'가 10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번역원과 프랑스 마르세유 국제 시 센터가 공동 진행한 이번 행사는 원작의 리듬과 의미를 온전히 옮기는 '살아 있는 번역'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피에르 시인은 "번역을 번역가에게만 의존하다 보면 내 의도가 정확히 반영될까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시인들이 시인의 감수성으로 시어 하나하나를 해부해 의미를 진단하는 아름다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먼저 원작자의 원문 낭독을 듣고, 번역자의 초벌 번역문을 바탕으로 1행씩 난상 토론을 벌인다. 이후 번역된 시를 다시 낭독해 음성적 유사성까지 조율한다. 이기성 시인은 "나 역시 '왜 이렇게 썼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 시작(詩作)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때론 평이한 일상어가 시적 표현으로 변환되기도 했다. 피에르의 시 속 '제비들은… 끊임없이 가로지른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공간을 구획한다'로 바꾼 게 그 예. 박상순 시인은 "당연해 보이는 문장에도 의문을 들이대니 숨어 있던 의도가 존재를 드러냈다"면서 "이번 작업은 번역보다 더 본질적인 문학 교류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14일 저녁, 시인들은 서울의 한 서점에 모여 이 작업의 결과물을 직접 낭독했다. 독자 30여 명은 뜻 모를 외국어에 귀를 기울이며, 한국어로 바뀐 시와 대조하며 번역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들의 시는 내년 한 권의 책으로도 묶여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