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 믿고 까부는 할리우드, 한 방에 '훅' 보내드립니다

공포영화에는 공식이 있다. '뒤를 돌아보면 죽는다' '애인과 뽀뽀하면 죽는다' '안심하면 죽는다' 같은 것들이다. 유독 한국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도 '필패(必敗) 공식'이 보인다.

본지가 영화 시장 분석 전문가 김형호씨와 함께 올해 10월 첫주까지 개봉한 미 박스오피스 톱 50 영화를 한국 시장 흥행 성적(매출 기준)과 비교 분석한 결과다〈그래픽〉. 미국서 올 흥행 1위인 '도리를 찾아서'는 한국서 19위였다. '마이펫의 이중생활'(미국 3위/ 한국 20위), '정글북'(4/16), '데드풀'(5/12),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7/21), '스타트렉 비욘드'(10/33), '고스트 버스터즈'(13/59) 등도 유독 한국서 고전했다. 한국 관객, 만만치 않다. 덩치만 믿고 까불면 한 방에 '훅' 보내버린다.

①비주얼로 밀다간 망한다

한국 관객은 유난히 드라마에 민감하다. '7번 방의 선물'(2013년 개봉, 1281만명, 역대 흥행 6위)이나 '해운대'(2009년, 1132만명, 11위)처럼 울리고 웃기는 드라마 강한 영화들이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는 시장이다. 화려한 비주얼과 실사 뺨치는 CG 시각 효과만 강조해선 관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배트맨 대 슈퍼맨' '레전드 오브 타잔'(미국 15위/ 한국 47위),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19/29) 등이 '눈이 호강한다'고 자랑하다 한국 시장서 외면당한 영화들이다.

②늦게 개봉하면 망한다

한국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한국 영화 대작들 눈치 보면서 개봉 시점을 조율해야 하는 독특한 시장이다. 특히 극장가에 가장 큰 장이 서는 여름과 연말 시즌엔 이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 개봉 시점이 미국보다 한 달 안팎 늦어지면 어려워진다. 올해는 대표적으로 '마이펫의 이중생활'(한국이 미국보다 26일 늦게 개봉), '정글북'(55일 늦음), '다이버전트 시리즈 얼리전트'(55일 늦음) 등이 늦게 개봉했다가 미국에 비하면 신통치 않은 흥행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③프랜차이즈 믿다간 망한다

영화 역사가 깊은 미국은 자국 시장만의 독특한 팬덤이 형성됐거나, 클래식 취급을 받는 영화가 많다. 만화, TV시리즈, 영화 등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하지만 이런 '프랜차이즈'의 힘만으로는 한국 시장에서 역부족이다. 미국에선 관객들의 '니모를 찾아서' 향수에 기대어 흥행 1위에 오른 '도리를 찾아서'가 한국선 19위에 그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스타트렉 비욘드' '고스트 버스터즈' '레전드 오브 타잔' 등이 비슷한 경우다. '스타워즈' 시리즈 역시 한국 시장에선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④성인 코미디는 안 통한다

한국 관객은 보통 '화장실 유머'로 불리는 미국식 성인 코미디 영화에 특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미국 시장에선 5위였지만 한국에선 12위에 그친 '데드 풀'은 수퍼 히어로의 선악(善惡)을 비튼 독특한 유머 코드로 나름 선전한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미국식 성인 코미디물은 아무리 미국서 흥행 1위를 해도 한국에선 극장에 걸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센트럴 인텔리전스'(미국 14위), '소시지 파티'(21위) 등이 아직 개봉 일정을 잡지 못했다. 인터넷TV로 직행하는 경우도 많다.

김설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연구교수는 "한국적인 문화와 역사에 충실한 좋은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늘어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관객도 이젠 할리우드 대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를 보지는 않는다. 제작 기반과 시장이 탄탄해진 만큼 관객의 영화적 공감대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