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을 전공 필수로 배우는 의대생들

"오세요 오세요 이리 오세요~."

지난 18일 울산대 음대 강의실에 어색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성악가인 음대 권정성 교수가 눈을 부릅뜨고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려!"

수업을 듣는 남학생 23명, 여학생 5명은 목을 쭉 펼 수 있도록 눈높이까지 악보를 치켜들고 힘껏 합창곡 '막걸리송'을 불렀다. 노래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배에 힘을 꽉 주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1학년 백지훈씨는 "테너, 베이스 등 파트를 맞춰 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음대생이 아닌 울산대 의예과 16학번 새내기들이다. 취미가 아닌 전공 필수과목으로 합창을 배우는 중이었다. 아직 고등학생티를 벗지 못한 1학년들은 이번 학기 내내 연습한 합창 실력을 학기 말 음대 정기공연에서 전교생 앞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예비 의사들이 합창 배우는 이유

울산대 의대는 지난해 입학생들부터 합창 수업을 전공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의대에서 교양과목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합창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전공 필수로 합창을 이수해야 하는 사례는 처음이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미래의 의료인들에게 합창 수업은 언뜻 생뚱맞아 보이지만, 합창은 울산대 의대가 시도하고 있는 인성 중심 교육의 한 부분이다. 울산대 의대는 지난해와 올해 합창(의학과 예술)을 비롯해 '공감과 소통''의료와 사회''의료현장' 등 인성 중심 수업을 전공 필수과목으로 도입했다. 기존의 화학, 생물학 등 기초 의대 수업은 줄이거나 선택 과목으로 돌렸다.

합창 수업의 초점은 '협업'이다. 이 커리큘럼 도입을 주도한 송재관 울산대 의대 학장은 "스무 살까지 공부에만 몰두하느라 자신밖에 몰랐던 학생들에게 의료인으로서 필요한 자세부터 가르쳐야 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환자 치료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의료 장비를 다루는 기술자 등 수많은 사람의 팀워크인데, 현 입시 체제에서 경쟁을 뚫고 온 의대생들은 머리는 좋지만 정작 협업과 소통에 대한 교육이 안 돼 있다"며 "합창을 통해 '나 혼자만 노래를 잘해선 안 되고 협업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합창 수업을 마친 1학년 김승민씨는 "혼자 공부만 할 때는 미처 몰랐던 협업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협업·공감·소통부터 가르친다

울산대 의대는 합창 말고도 다양한 이색 수업을 도입했다. 이날 오전 '공감과 소통' 수업에서는 대인 관계 전문가가 타인과의 언어적·비언어적 교감에 대해 강의했다. 학생들은 화가 난 환자,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 말 안 듣는 환자 등을 대할 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의사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효과적일지 토론했다.

이 수업 역시 송 교수가 올해 처음 도입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수술하는 '알파고 시대' 의사의 역할은 집도(執刀)가 아니라 환자와 공감하고 기계가 해줄 수 없는 마음의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그는 "의대 신입생은 어릴 때부터 공부만 하느라 가족행사에 다 빠질 만큼 '특별대우'에 익숙한 학생들"이라며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1학년 때부터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주 금요일에는 의료 현장 탐방 수업이 있다. 병원의 각 주요 부서를 견학하며 병원 구성원들의 역할과 의사와 협력·갈등 관계 등을 이해하도록 하는 수업이다. 1학년들은 학기 초 매주 금요일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병원에 상주하며 현장을 관찰하도록 했다. 학기 중 틈틈이 '호스피스 및 중환자실 봉사' 과목도 이수해야 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나 그 가족들과 교류하고, 봉사의 소명과 기쁨 등을 체험하는 과목이다. 1학년 이용준씨는 "청소년 때부터 인성·소통이 중요하단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딱히 배울 기회가 없었다"면서 "다양한 과목을 통해 의학 공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