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빴던 극장가, '착한 영화'가 도착했습니다

여름부터 극장가는 줄곧 숨 가빴다. 좀비에게 쫓기거나('부산행'), 터널에 매몰되거나('터널'), 목숨 걸고 제국주의에 저항('밀정')해야 했다. 20일 개봉하는 심은경 주연의 '걷기왕'(감독 백승화)과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미스터 캣'(감독 배리 소넨필드)은 가족과 함께 쉬어가기 좋은, 포근하고 따뜻한 영화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영화가 웃음 띤 얼굴로 위로를 건넨다.

◇멀미왕 소녀의 인생 경보(競步) '걷기왕'

버스건 소달구지건 뭐만 타면 토하는 탓에 어려서부터 걷기에 이골 난 강화도 여고생 만복이(심은경). 딱히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잘하는 것도 없다. 매일 왕복 네 시간을 걸어 등하교하는 만복에게 "꿈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을 강조하는 담임교사가 육상을 해보라고 권한다. 다들 꿈을 찾아가는데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서웠던 만복은 "목숨 걸고 해보겠다"며 도전을 시작한다.

 

세상은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며 채찍질하지만, 실은 모두가 1등을 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영화는 남들이 정한 성공 모델에 갇히지 말고, 각자 생긴 대로 잘하는 걸 찾아가며 느리지만 행복하게 살아 보자고 권한다. 입시경쟁, 취업지옥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써니'(2011)로 699만, '수상한 그녀'(2013)로 866만 관객을 동원했던 심은경은 이런 저예산 영화에서도 여전히 천연덕스럽고 사랑스러워 웃음이 난다. 조연들의 앙상블도 좋다. 상영시간 92분, 12세 관람가.

◇욕심쟁이 아빠 개과천선기 '미스터 캣'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보고 싶어 몸이 달 것이다. 일만 아는 재벌 아빠(케빈 스페이시)가 북미 1위 최고층 빌딩 완공을 앞두고 딸에게 생일 선물로 주려고 샀던 고양이와 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한바탕 소동극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뻔한 줄거리인데도, 까칠한 듯 허술한 고양이 연기에 빨려들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푸른 눈에 윤기 나는 긴 털을 가진 시베리안 포레스트 종의 고양이 '복실이'는 여섯 마리의 다른 고양이가 연기한 합작품. 인간 배우 뺨치는 표정 연기에다 술도 마시고 춤까지 추는데, 8할이 고양이들의 실제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실사 촬영이 어려운 고양이의 '몸 개그'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로 미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에릭 드 보어의 솜씨로 만들어냈다.

스스로 '고양이 집사'라 여기는 애묘인들에게, 또 아이들과 많은 시간 보내지 못해 미안한 부모들에게 착한 선물 같은 영화. '맨 인 블랙' 시리즈로 16억불 넘는 세계 흥행 수입을 올린 배리 소넨필드 감독 작품으로, 아내 '라라' 역의 제니퍼 가너, 신비한 펫숍 주인 역의 크리스토퍼 워큰 등 조연들도 믿음직하다. 상영시간 87분,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