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젊은이만 있나… 요즘 TV는 자연스럽지 못해"

노년의 향연이다. 비둘기 분장을 한 경찰을 잡아먹으려는 할머니('노부인과 비둘기'), 마피아를 때려잡는 세 쌍둥이 할머니('벨빌의 세 쌍둥이'), 소녀에게 삶의 마법을 선물하는 마술사 할아버지('일루셔니스트')…. 이들의 분투가 관객을 요동치게 한다. 유럽 최고 반열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꼽히는 실뱅 쇼메(53)가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전 참석차 19일 첫 방한했다. "오늘 공항에서 한국인 노부부를 봤어요. 줄 제대로 안 선다고 아내가 남편의 등짝을 힘차게 내리치더군요. 그런 노년의 에너지가 제게 영감을 줍니다."

프랑스인이면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만 4회 노미네이트됐고, 영국아카데미·유럽영화상 등 세계 유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휩쓸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그림체와 색감, 동화적 줄거리가 감정의 파고를 선물한다. "세상엔 젊은이도 있고 늙은이도 있죠. 근데 요샌 TV만 봐도 청년밖에 없어요. 그건 자연스럽지 않아요." 22일 행사에서는 그의 이력을 총결산하는 작품 6편과 함께, 내년 개봉 예정인 장편 '1000마일'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짧게 말하면, 1950년대 이탈리아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 두 할배의 로드 무비입니다."

1996년 첫 단편 '노부인과 비둘기'부터 20년간 애니메이션에 투신하고 있지만, 그는 만화가다. 그래픽노블 '레옹 라 캄'(1995)으로 프랑스 르네 고시니상, '추하고 가난하고 그리고 아픈'(1997)으로 앙굴렘만화축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만화가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만화를 놓지는 않았다. 다음 달 아내와 함께 작업한 어린이 그림책이 나온다. "못된 은행원이 빚 대신 아이들을 받아 은행원으로 근무시킨다는 얘기랍니다."

그의 그림은 종이 만화(그래픽노블)의 확장이다. "자동차·배 같은 건 가끔 3D 작업을 하지만, 인물은 무조건 2D로 구현합니다. 실제 그림 없이 인물이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해요. 피아노 없이 피아노 연주곡을 만드는 것 같달까."

언어도 최소화한다. 그의 작품에선 대사가 아예 없거나 몸짓이 대화의 주된 통로인 경우가 많다.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등 코미디 배우들 보세요. 대사 없이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하잖아요." 그래서 음악이 중요해진다. '벨빌…'과 '일루셔니스트' 삽입곡은 직접 작곡했다. "다만 '1000마일'은 이탈리아 노인이 주인공이다 보니 대사가 꽤 될 거예요. 대사뿐 아니라 특유의 제스처도요. 입과 몸의 언어가 섞이는 게 흥미로울 겁니다."

한국과의 공동 제작도 준비 중이다. '벨빌의 세 쌍둥이'의 또 다른 이야기. 제목은 '스윙 포파 스윙'이다. "세 쌍둥이 아버지의 100세 생일 얘기를 그릴 예정이에요. 서울이 작품 배경이 되면 멋지겠네요."

키 192㎝의 거구인 그는 2남3녀 중 막둥이다. 막내 누나보다 열 살이 어리다. "두 살 때 혼자 놀라고 엄마가 종이랑 연필을 주셨고, 그게 제 첫 커리어가 됐죠." 그가 처음 그린 건 거실에 있는 TV였다. 이제 그는 거기 나오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 "만화는 제게 일종의 치유예요. 관객에게도 그랬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