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연륜, 젊은이의 혁신… 경제 살릴 '두 키워드'

우리나라 사람들을 나이 순서대로 일렬로 세운 뒤 정확히 중간에 있는 사람을 뽑아보면 나이가 41세입니다. 중년에 들어선 것입니다. 미국, 중국의 37세는 이미 추월했고 일본, 독일의 46세도 머지않아 따라잡을 기세입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외치던 2002년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33세 청년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는 우리 경제의 여러 부문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산업과 기업도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고령화는 경제의 혁신 역량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혹시 요즘의 저성장 기조가 고령화와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요?

◇수렵사회선 고령화가 생산성 높여

전통적으로 우리는 늙을수록 현명해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뿌리깊은 연공서열제부터 노인 공경의 미풍양속까지 모두 나름의 경제적 근거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은 아마존의 숲 속에서 여러 부족을 상대로 연령별 생산성을 측정한 적이 있습니다. 즉, 사냥을 얼마나 잘하느냐를 나이대별로 알아본 것인데, 10대나 20대보다 40대·50대가 사냥을 더 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르마딜로(작은 포유류 동물) 같은 쉬운 사냥감은 젊은이들도 잘 잡았지만 원숭이 같은 복잡한 사냥감일수록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생산성이 높았습니다. 이들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50대면 이미 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수렵사회에서 중년 이후 세대의 생산성이 높게 나온 것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과 직관이 육체적 힘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제 구조가 단순하고 과거의 수렵 방식이 미래에도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적당한 정도의 고령화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잃어버린 20년'은 고령화 영향 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 그리고 그 원동력인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하는 경제입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과감한 변화, 때로는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령화는 혁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의 '잃어버린 20년'이 고령화로 인해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데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의 라지어(Lazear)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일수록 기업가 정신 지수가 낮다고 합니다.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경영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기업조직이 고령화돼서 젊은 나이에 경영을 배울 수 있는 간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면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경영 능력을 키울 기회를 애초에 갖지 못하게 됩니다. 즉, 기업 내 연령 구조가 늙어가면서 혁신적 경영자를 키우지 못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창의성과 경영 능력을 잘 결합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독 일본 기업들에서만 기업 최고경영자들, 즉 CEO들의 평균 나이가 60대로 세계 평균 50대보다 훨씬 높습니다. 새로운 경영자 육성이 잘 되지 않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우리나라 CEO들의 평균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일본 바로 다음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 고령화는 혁신에 안 좋은 영향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나이가 혁신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MIT의 애스모글루(Acemoglu)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CEO가 젊을수록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잘 하고 혁신의 질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혁신을 이끄는 주요 IT 기업들의 CEO가 모두 젊고 이들이 20대일 때 창업을 시작했다는 점을 보면 세상을 바꾸는 큰 혁신은 대부분 젊은이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했을 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CEO의 나이가 많을수록 혁신의 크기가 작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령일수록 과감한 변화를 꺼리고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 학문의 경우에도 노벨상을 받은 혁신적 발견들은 대부분 30대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대다수 학자가 박사과정을 밟는 데 20대를 보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젊은 나이입니다.

또 지리적으로도 젊은이의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벤처 창업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의 혁신 중심지들인 실리콘밸리나 보스턴 같은 곳들이 모두 대학가 주변이고 젊은 창업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을 봐도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혁신을 뒷받침하는 금융도 고령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고령화된 가계일수록 주식이나 벤처펀드 같은 위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대한 연기금들조차도 연금 가입자들이 고령화될수록 위험자산을 덜 보유하려 한다는 관찰도 있습니다. 큰 혁신일수록 위험이 따르고 자금도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고령화로 인해 위험한 곳에 자금을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적어진다면 혁신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청년 혁신 역량 키워야 미래 성장 동력 만들 수 있어

결국 경제의 혁신이 잘 이루어지려면 젊은이들이 모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경영 능력 및 자금과 결합해서 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젊은이들이 늙어가는 조직의 하부에 머물면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든지, 과감한 혁신보다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든지, 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자산에만 돈이 몰린다든지 하게 되면 고령화의 부작용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평가해보면 걱정되는 점들이 매우 많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창의성을 살리기보다는 위험 회피적인 직업을 갖고자 하고, 시중의 자금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의 부동산에 몰리고, 산업과 기업은 과거를 답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창업으로 떠밀어 보지만 이들의 열정은 거대한 기존 시스템의 벽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곤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전방위적으로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것입니다.

고령화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오랜 기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깊어지는 지혜와 축적된 자산을 잘 활용해서 젊은이들이 혁신에 더 많이 참여하고 스스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혁함으로써 경제의 혁신 역량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성공해야만 출산율도 높아져서 고령화 추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고령화 사회

고령화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7년 고령 사회,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