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近代가 시작됐다
입력 : 2016.10.21 23:42
생계 위해 이동하는 수렵 본능… 일터로 출퇴근하는 행위에 남아
철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통근
교통 발전하고 주거·식생활 변화… 정확한 '시간' 개념도 확산시켜
출퇴근의 역사 | 이언 게이틀리 지음 |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442쪽 | 1만9800원
근대가 채 시작되기 전 중세의 습관이 더 많이 남아 있었을 때 사람들은 하루 두 끼를 먹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오후 3~4시쯤 디너(dinner)를 즐겼다. 어두워진 뒤 먹는 야식(supper)은 이례적이었다. 집에서 먼 도시의 사무실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 리듬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으며, 출근을 위해 기차를 타러 가기 전 아침을 먹었고,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었다.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의 간격이 길어지면서 슬그머니 '런치(lunch)'가 생겨났다. 집을 떠나 직장으로 먼 길을 출퇴근하는 '통근족(commuter)'들이 불러온 변화였다.
◇늦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생기다
'담배와 문명' '음주 : 알코올의 문화사' 등의 전작(前作)을 통해 현대의 풍속사를 탐구해온 저자 이언 게이틀리는 이번엔 아침저녁마다 지구상의 모든 대도시에서 버스·철도·지하철·승용차의 거대한 행렬을 이루는 출퇴근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 역시 영국 햄프셔주 교외의 보틀리역에서 런던 워털루역까지 매일 110㎞를 오가는 통근족. 흥미로운 역사적 디테일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기차에서 썼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현대적 의미의 출퇴근은 철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철도 덕분에 단위 시간당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도시에서 30~40㎞ 이상 떨어진 교외에 집을 얻어 출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산업혁명 초기의 대도시는 더럽고 냄새 나고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특히 1854~1866년 런던에선 콜레라가 대(大)유행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깨끗한 주거 환경을 찾아 '탈(脫)도시'에 나섰다.
근대가 채 시작되기 전 중세의 습관이 더 많이 남아 있었을 때 사람들은 하루 두 끼를 먹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오후 3~4시쯤 디너(dinner)를 즐겼다. 어두워진 뒤 먹는 야식(supper)은 이례적이었다. 집에서 먼 도시의 사무실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 리듬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으며, 출근을 위해 기차를 타러 가기 전 아침을 먹었고,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었다.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의 간격이 길어지면서 슬그머니 '런치(lunch)'가 생겨났다. 집을 떠나 직장으로 먼 길을 출퇴근하는 '통근족(commuter)'들이 불러온 변화였다.
◇늦는 것에 대한 공포가 생기다
'담배와 문명' '음주 : 알코올의 문화사' 등의 전작(前作)을 통해 현대의 풍속사를 탐구해온 저자 이언 게이틀리는 이번엔 아침저녁마다 지구상의 모든 대도시에서 버스·철도·지하철·승용차의 거대한 행렬을 이루는 출퇴근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 역시 영국 햄프셔주 교외의 보틀리역에서 런던 워털루역까지 매일 110㎞를 오가는 통근족. 흥미로운 역사적 디테일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기차에서 썼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현대적 의미의 출퇴근은 철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철도 덕분에 단위 시간당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도시에서 30~40㎞ 이상 떨어진 교외에 집을 얻어 출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산업혁명 초기의 대도시는 더럽고 냄새 나고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특히 1854~1866년 런던에선 콜레라가 대(大)유행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깨끗한 주거 환경을 찾아 '탈(脫)도시'에 나섰다.
현대인들의 삶 속으로 '시간' 개념도 들어왔다. 철도가 생기기 전만 해도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철도가 시간에 맞춰 운행되지 않으면 곳곳에서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달랐던 시간도 '표준 시간'으로 통일해야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흰 토끼가 보여주는 시간에 대한 '병(病)적' 강박이 이때 탄생했다. 지각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세계 모든 통근족들이 공유하는 것 아닐까. 시간에 맞춰 교대되는 공장 노동과 어김없이 출발하는 기차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 세계에 끼어 있던 중세적 모호함의 안개를 걷어냈다.
◇'함께'인 동시에 '혼자'인 사람들
출근족들은 '읽기 문화'를 확산시킨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나 코난 도일의 소설 길이는 출퇴근 길에 읽기 적당한 분량으로 각 장(章)이 나눠졌다. 현대에는 신문사나 출판사 대신 통신 회사들이 통근자들의 행태를 연구한다. 1969년 뉴욕과 워싱턴DC를 오가는 고속철도 메트로라이너(Metroliner)에 최초로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가 도입된 이래 통신 회사들은 끊임없이 출퇴근족들의 시간을 노려왔다.
만원 지하철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철도를 이용해 런던과 뉴욕으로 출퇴근하던 100여년 전 통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독한 군중(群衆)'은 출퇴근 시간에 탄생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대중교통에서 매일 아침마다 신체의 일부가 밀착될 정도로 사(私)적인 거리가 완벽하게 사라진 공간을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물건'처럼 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렵 본능은 살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아침마다 집을 나와 일터로 가는 행위가 먼 옛날 수렵·채집 사회에서의 생활 방식을 반복하는 행위라고 본다. 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의 사냥꾼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매일 한 시간쯤 걸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통근자들의 평균 이동 시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도 수렵 생활을 하는 탄자니아의 하드자 부족 남성은 매일 11.4㎞를 걷는다고 한다.
저자는 '통신 혁명'으로 가능해진 재택근무가 출근하는 문화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냥 및 채집을 하려는 '유전적' 경향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싣거나 꽉 막힌 도로를 향해 하루의 길을 떠나는 통근자들은 무수한 동족(同族)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져도 좋다. 출근은 인류가 동굴에 살던 시절부터 가족을 유지하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반복해온 위대한 행위의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기에.
◇'함께'인 동시에 '혼자'인 사람들
출근족들은 '읽기 문화'를 확산시킨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나 코난 도일의 소설 길이는 출퇴근 길에 읽기 적당한 분량으로 각 장(章)이 나눠졌다. 현대에는 신문사나 출판사 대신 통신 회사들이 통근자들의 행태를 연구한다. 1969년 뉴욕과 워싱턴DC를 오가는 고속철도 메트로라이너(Metroliner)에 최초로 상업용 휴대전화 서비스가 도입된 이래 통신 회사들은 끊임없이 출퇴근족들의 시간을 노려왔다.
만원 지하철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도 혼자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철도를 이용해 런던과 뉴욕으로 출퇴근하던 100여년 전 통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독한 군중(群衆)'은 출퇴근 시간에 탄생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대중교통에서 매일 아침마다 신체의 일부가 밀착될 정도로 사(私)적인 거리가 완벽하게 사라진 공간을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물건'처럼 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렵 본능은 살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아침마다 집을 나와 일터로 가는 행위가 먼 옛날 수렵·채집 사회에서의 생활 방식을 반복하는 행위라고 본다. 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의 사냥꾼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매일 한 시간쯤 걸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통근자들의 평균 이동 시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도 수렵 생활을 하는 탄자니아의 하드자 부족 남성은 매일 11.4㎞를 걷는다고 한다.
저자는 '통신 혁명'으로 가능해진 재택근무가 출근하는 문화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냥 및 채집을 하려는 '유전적' 경향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싣거나 꽉 막힌 도로를 향해 하루의 길을 떠나는 통근자들은 무수한 동족(同族)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져도 좋다. 출근은 인류가 동굴에 살던 시절부터 가족을 유지하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반복해온 위대한 행위의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