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야 갈치야… 참 사먹기 힘들어졌구나

2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이마트 용산점. 식품 매장의 채소 코너 앞에 선 주부 장모(36)씨는 무를 몇 차례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카트에 담지 못했다. 무 한 개 가격은 3280원. 작년 이맘때 1300원 정도였으니 배가 넘게 오른 셈이다. 정씨는 "김장 전까지 먹으려고 깍두기를 담그려 했는데 좀 기다려 봐야겠다"고 했다.

최근 농산물과 생선·육류 가격이 치솟으면서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올여름 폭염과 최근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한 채소류 가격이 급등한 데다, '국민 생선'이라 불리는 갈치는 한·일 어업협상 결렬에 따른 조업 금지와 중국 어선의 남획 등으로 가격이 껑충 뛰었다. 주부들은 "장 보기가 겁난다"고 했고, 식당 주인들은 "손님들에게 반찬 내놓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여름 폭염과 가을 태풍으로 작황 부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소매 가격 정보에 따르면, 이날 기준 중간 품질의 무 한 개 가격은 336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48% 급등했다. 상품(上品) 배추 한 통은 4011원으로 같은 기간 68%나 올랐다. 한 통에 6000~7000원을 호가해 '금(金)배추'라고 불리던 한 달 전보다 떨어졌다고 해도 평년에 비해 2000원 정도가 여전히 비쌌다. 쌈 채소로 즐겨 먹는 청상추(100g)는 1367원, 풋고추(100g)는 1076원으로 각각 60~90% 뛰었다. 서울 중구의 삼겹살 전문점 주인 김모씨는 "손님들이 상추와 풋고추를 추가로 달라고 할 때마다 거절할 수도 없어 속만 태운다"고 말했다. 애호박도 한 개에 1759원으로 80% 올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강원도 산간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배추가 폭염과 집중 호우로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했다"며 "무도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 등으로 대체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깐마늘과 대파 등 양념류 가격도 전년보다 5~26% 정도 상승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배추 공급량이 회복되며 가격이 하락세를 보여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는 11월부터는 평년 수준까지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0% 넘게 가격 뛴 갈치 "밥상에 못 올린다"

이날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수산 코너는 한산했다. 국산 생물 제주 은갈치 다섯 토막을 포장한 9980원짜리와 6480원짜리 해동 갈치가 판매대에 진열돼 있었지만 선뜻 고르는 사람이 없었다. 주부 고모(48)씨는 "당분간 갈치를 밥상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산 코너의 정민교 담당은 "작년 갈치 할인 행사 때는 비슷한 상품을 5500원 안팎에 내놓았는데, 올해는 가격을 올렸더니 매출이 20%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생갈치 1마리 가격은 작년에 비해 40% 넘게 올랐다. 손님들은 대신 4마리에 5800원짜리 자반 고등어를 골랐다. 수산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6월 한일 어업협상 결렬의 영향으로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조업이 금지되면서, 제주도 서귀포에서 남쪽으로 200㎞ 이상 떨어진 일본 EEZ에서 상당량이 잡히는 갈치의 어획량이 줄었다"고 말했다.

강수경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중국 어선의 남획 등으로 어족 자원이 줄어들었고, 예년보다 높은 수온 탓에 회유성(回游性) 어족인 갈치가 주요 어장을 벗어나 일찍 북상한 탓도 있다"며 "갈치 어군이 다시 돌아오는 다음 달부터 어획량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물오징어 가격은 10% 가까이 올랐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생선구이 전문점을 운영하는 권모(32)씨는 "기본 반찬으로 드리던 데친 오징어를 얼마 전부터 못 내놓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재료비가 늘어 음식 값을 올려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육류 가격도 심상치 않다. 호주의 가뭄으로 목초지가 줄어들면서 사육 두수가 감소해 호주산 소고기 가격이 뛰었고, 미국산 소고기 값도 최근 중국 시장을 겨냥한 물량 조절 여파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주부 김모(47)씨는 "지갑은 가벼운데 한우 대신 즐겨 찾던 수입 소고기 값까지 올라 답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