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사는 2030 여성 노리는 '高利의 덫'

지난 19일 오후 11시쯤 원룸 건물이 밀집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골목에 빨강·노랑 등 울긋불긋한 색의 명함 크기 전단들이 널려 있었다. '신용불량자나 가정주부도 아무 조건·담보 없이 당일 바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일수(日收) 대출 광고였다. 전단 오른쪽 상단엔 '공식등록업체'라는 문구와 함께 이자율이 법정 최고인 '연 27.9%'로 적혀 있었다. '200만원 빌리면, 100일 동안 하루 2만5000원씩 갚으면 된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전단도 있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은 "매일 오후 8~10시 사이 오토바이가 일수 대출 전단을 뿌리며 빠르게 지나간다"며 "혼자 사는 여성이 많은 골목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30대 여성들이 불법 '일수 대출'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당산동을 비롯, 서대문구 연남동과 서초구 방배동, 성북구 종암동 등 원룸 건물이 많은 동네에는 거의 매일 돈을 빌려주겠다는 전단이 집중적으로 뿌려지고 있다. 마치 합법적인 대부 업체처럼 포장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불법 업체다. 본지가 전단에 있는 번호 5곳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5곳 중 4곳은 "300만원 이상 대출 시 10% 선이자(또는 수수료)를 뗀다"고 했다. 300만원을 빌리면 30만원을 미리 떼고 270만원만 주는 방식인데,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불법이다.

이들이 제시한 이자율도 법정 한도를 넘는 불법이다. 일수 업체들은 200만원을 빌린 뒤 하루 2만5000원씩 100일간 갚으면 250만원이 되니까 이자율이 25%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자율은 100일이 아니라 연간으로 환산해서 날마다 이자가 붙는 복리(複利) 방식으로 계산해야 한다. 금융감독원(www.fss.or.kr)의 '이자율 계산기'로 계산하면 이런 일수 대출의 이자율은 25%가 아니라 연 168%가 된다. 100만원을 빌리면 원금과 이자를 합쳐 268만원을 갚아야 하는 고리대금인 것이다. 한 대부 업체는 "불법 아니냐"고 묻자 퉁명스럽게 "알고 전화한 것 아니냐. 싫으면 은행에서 대출받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경찰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 대부 업체가 여성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것은 대출금 회수가 남성들보다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인이나 가족에 대한 협박이 잘 통하고, 폭력적인 채권 추심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점을 대부 업체가 악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에 대한 악성(惡性) 불법 추심 행위는 자주 벌어진다. 부산경찰청은 지난달 28일 유흥업소 여종업원(26)에게 연 390% 이자로 200만원을 빌려준 뒤 "이자를 갚지 않는다"며 이 종업원 집으로 찾아가 성폭행한 혐의로 대부 업자 방모(35)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여성을 상대로 한 불법 대출은 성폭행 같은 심각한 '2차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도권의 대출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에 여성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린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에게 제출한 금융권별 여성 대출 실적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여성 대출은 올해 상반기에 5조343억원으로 작년 연간 대출(12조1683억원)의 41% 수준에 그쳤다. 반면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10개 대부 업체의 올 1~6월 여성 대출액은 3조642억원으로 이미 작년 연간 실적(2조9096억원)을 넘었다. 불법 무등록 일수 업체는 대출 통계 자체가 없지만, 여성 대출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감독 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불법 대부 업체를 단속하고 있는 서울시 특별사법경찰대 관계자는 "명함형 전단을 뿌리는 대부 업체는 99% 이상 불법이므로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