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청계천변 고물상에서 태어난 '한국 최초의 컴퓨터'?

올해 3월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의 제목은 '이만영(李晩榮) 박사와 한국 최초의 컴퓨터'였다. 초대장에 인쇄된 사진에는 양복을 차려입은 40세의 이만영 박사가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를 배경으로 카메라를 자신만만하게 응시하고 있다. 1964년에 제작된 전자계산기 3호기는 연구실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1964년 당시 한국은 제1차 경제 개발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전력, 시멘트 등 필수적인 기간산업을 제외하고는 노동집약적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이만영은 경성공립공업학교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 무렵 조선전업(朝鮮電業)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였다. 종전 직후 한미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 보잉(Boeing)사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 한양대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이만영은 한양대 학생들과 함께 청계천변 노점 고물상을 이 잡듯이 뒤졌다. 망가진 미군 통신기에서 나온 진공관, 저항기, 변압기, 콘덴서 등을 모아 전자계산기로 재탄생시켰다. 겉면을 이루는 철판은 을지로4가의 철공소에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기계 공구 업체들의 네트워크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만영의 사례는 이 지역이 1960년대 초에 이미 새로운 물건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용한 자원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무렵 제작된 진공관을 이용한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이만영의 '3호기' 외에도 연세대학교 한만춘(韓萬春) 교수의 '연세 101'이 있었다. 수많은 한국인이 기본적인 생계를 걱정하던 산업화의 여명기에 전자계산기를 만들려 했던 엘리트 엔지니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만영은 자서전에서 처음의 의도가 '교육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한만춘의 '연세 101'은 전력 계통 관련 연구에 활용되었다고 한다. 눈앞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엔지니어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