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김동인·이효석… 사랑으로 편지를 쓰다

사랑을 쓰다, 그리다, 그리워하다ㅣ이상·이광수·김동인 외 지음ㅣ루이앤휴잇ㅣ232쪽ㅣ1만3000원

"오늘 밤처럼 우울했던 날도 없었습니다. 당신을 대구에 두고, 나 혼자 부산 거리를 헤매는 것이 무척 슬펐습니다." 가난해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시인 박인환은 아내를 향한 염화(炎火)를 쏟아낸다. "사랑하는 나의 정숙! 나는 지금 당신의 무릎을 껴안고 온 힘을 다해 당신의 목을 끌어안고 싶습니다… 돈이 없어 죽겠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무한한 유일의 재산이며, 영원한 당신의 것입니다."

김영랑·이육사(시인), 김동인·이효석(소설가) 등 근대 작가 15인의 편지가 한 권에 담겼다. 감옥에서 아내에게 면회를 부탁하는 김동인, 금강산 여행 도중 만난 남성에게 정신을 잃은 노자영처럼, 수신인을 가족·친구·연인·문우 넷으로 나눠 각각의 우체통에 넣어뒀다.

편지는 타인에게 보이는 일기장. 문장은 당시의 처지와 심경으로 절절하다. 일본 유학 간 이상이 신경쇠약을 호소하며 1936년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내달 중으로 경성(京城)으로 도로 돌아갈까 하오. 여기 있어봤자 몸이나 자꾸 축나고 겸하여 머리가 혼란하여 불시에 발광할 것만 같소…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바구니에 끼어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가 보오."

편지를 쓰게 하는 건 사랑. 1937년 병상에 누운 소설가 김유정은 서간체를 빌려 예술을 논하면서도 이 단어를 놓지 않는다. "위대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로 찾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 전 인류의 여망(餘望)이 달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