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뒤의 여자, 분노 앞에 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행세하며 국정(國政)을 농단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씨가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왔다.

최씨는 이날 오후 3시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권력의 그림자 뒤에 숨어 지내온 최씨가 국민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당초 검찰이 준비해 놓은 포토라인에서 대(對)국민 사과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구속하라'고 적힌 종이 팻말을 든 30여명의 시위대가 최씨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포토라인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검찰 직원 10여명이 최씨를 에워쌌고, 최씨는 계속된 기자들의 질문에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날 검찰청사에는 내외신 기자 400여명이 몰려들었다.

최씨는 취재진과 시위대에 떠밀리듯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최씨의 프라다 신발 한쪽이 벗겨지기도 했다. 그는 검찰 출입문을 들어가면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했지만 시위대 고함에 묻혔다. 한 남성은 검찰청사 현관 앞에 동물 배설물을 뿌렸다. 최씨는 7층 조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조사실로 향하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며 울먹였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최씨는 검은색 코트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과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다. 최씨는 줄곧 정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인 지난 7월 자신의 모습을 찍던 TV조선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손으로 밀쳐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검찰은 이날 밤 최씨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이르면 1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최씨는 자신에 대한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독일로 출국한 지 57일 만인 지난 30일 아침 귀국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 두 재단 모금에 깊숙이 개입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박 대통령의 문고리 보좌진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을 출국 금지했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 중 두 사람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헬스트레이너 출신인 청와대 윤전추 행정관을 31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최씨와 딸 정유라씨, 지난 9월 중국으로 출국한 광고감독 차은택씨의 금융 계좌 내역도 추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