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학자들, 편의점 담배광고 보면 기절해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습니다. 담배 회사들의 '비밀' 전략을 알아야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 나올 수 있죠."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일 "금연 정책이 금연 구역 확대와 같은 흡연자에 대한 규제 중심에서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담배 광고 금지와 같은 담배 회사에 대한 규제로 전환·확대된 것은 담배 회사 비밀 문건 연구의 역할이 컸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유일의 담배 회사 비밀 문건 연구자이며 대한금연학회 홍보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상대의 약점 노려야

"금연 정책은 치열한 수 싸움의 결과죠. 담배 회사들은 니코틴 중독자를 늘리려고 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 연구위원은 비밀 문건을 보면 다국적 담배 회사들도 '흡연이 니코틴으로 인한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 중독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담배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강한 중독성을 끊어내려면 담배 회사가 중시하는 것을 막는 규제가 필수라고 말했다. 예컨대 담배 가격을 올리면 담배 회사들은 대응 전략으로 소포장 담배를 내놓으니 이를 막아야 하고, 담배 맛을 좋게 하려고 '콜라맛, 사과맛, 단맛 궐련까지 검토'(브라운 앤드 윌리엄슨)하니 가향(加香) 담배를 규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담뱃갑 역시 단순한 종이상자가 아닌, 담배 회사 '최후의 마케팅 보루'"라고 말했다. 그는 담배 회사들이 담뱃갑을 '흡연자들과 우리의 마지막 소통 수단'(필립 모리스)이라 표현할 정도로 중시하니, 흡연 경고그림은 흡연율을 끌어내리는 것뿐 아니라 청소년이 담배에 손대는 것을 막는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한 나라들은 흡연율이 평균 4%포인트 떨어지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담뱃갑 흡연 경고그림 도입(12월 23일)을 약 두 달 앞두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담배 회사 비밀 문건 연구는, 1994년 담배 회사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을 대리하던 로펌에서 일하던 한 비서가 이 회사의 비밀 문건을 유출하면서 시작됐다. 1만 쪽 넘는 내부 문서가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스탠턴 글란츠 교수의 손에 전해지면서 관련 연구가 태동했다. 미국 내 60년 담배 소송사에서 담배 회사들이 패소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문서들 덕분이었다.

글란츠 교수의 제자인 이 연구위원은 이 같은 문건 연구를 토대로 '국산 담배 성분 분석'이란 보고서를 2012년 내놓고 "한국 KT&G 담배에도 니코틴 중독성을 키우는 암모니아 성분이 들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2004년 법원이 KT&G의 담배 연구 문건을 제출하라고 요청해 일부(464건) 공개된 적이 있지만 영업 비밀 문건 등이 제외돼 '알짜' 문건은 아니었다"며 "그래도 다국적 담배 회사 문건 중 국내 담배 시장이나 흡연자 추이 등 한국 관련 문건만 6만2000건이라 참고할 내용이 방대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타깃… 편의점 광고 막아야"

이 연구위원은 강력한 금연 정책을 전개하려면 △담뱃값 인상 △흡연 경고그림 △금연구역 확대와 함께 △담배 광고 규제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외국 학자들이 우리나라 편의점에 들어가 휘황찬란한 담배 광고를 보면 '기절하겠다'고 그래요." 실제로 담배 회사들은 '오늘날 10대는 미래의 잠재적 단골손님'(필립 모리스)이라 할 정도로 청소년들을 유혹하니, 현란한 광고에 어린 흡연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담배 회사들이 '어항 속 물고기' 정도로 생각하는 기존 흡연자들도 어항 속을 빠져나가게 하려면 흡연 경고그림의 크기를 확대하는 등 더 강한 정책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