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찾은 나만의 일탈" "클럽도 좋은데, 장가는…"

"어머니, 날씨 추운데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셨네요. 코트 너무 멋져요."

"10년도 더 된 옷인데 뭘. 머리도 하얀 사람이 너무 멋 부린 거 아닐까?"

아들과 어머니가 아니라, 딸과 엄마의 대화 같았다. 개그맨 박수홍(47)과 어머니 지인숙(75)씨는 지난 31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나자마자 쉴 새 없이 수다를 이어갔다. 아들은 어머니 옷깃을 매만지며 세심하게 챙겼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눈동자에선 '하트'가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이 살가운 모자(母子)는 요즘 인기 예능 SBS '미운우리새끼'에 출연 중이다. 노총각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 아들 일상을 관찰 카메라로 들여다보며 때론 충격받고 때론 한숨짓는다. 금요일 늦은 밤 방송하는데도 매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박수홍은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반듯한 이미지를 뒤엎으며 시청자에게 '유쾌한 배신감'을 선사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클럽에 푹 빠져 밤늦게 춤추러 다니거나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는 등 '탈선'을 시도하고,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어머니가 탄식하는 장면이 매주 화제가 된다.

같은 아파트 위아래층에 살던 모자는 4년 전 이사하면서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져 살게 됐다. '아들의 사생활'을 어머니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다 큰 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일부러 집에 없을 때 반찬을 갖다 놓지요. 혼자 사는 수홍이가 늘 걱정이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요."

데뷔 후 지금까지 항상 프로그램을 3개 이상 맡으며 "공무원처럼 일해왔다"는 박수홍은 4년 전 친구 생일 때 클럽에 가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즐겁게 춤추며 노는 신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분(分) 단위로 평가받잖아요. 남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사느라 정작 나 자신의 기쁨은 잊고 살아왔다는 걸 마흔 넘어 깨달았죠."

말끔하지만 다소 갑갑해 보이기도 했던 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박수홍은 삶을 유쾌하게 즐기며 젊은 세대와도 소통하는 '아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복면가왕' '라디오스타' '런닝맨' 등 대표적 지상파 예능에 최근 잇따라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요즘 10~20대 젊은이들이 제 얼굴을 보면 소리를 질러서 당황스러워요. 저는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그냥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보여주는 것뿐인데."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이 많다. 지인숙씨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유독 꺼리는 성격이지만, 아들에게 좋다고 하니 무조건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막상 '날라리 이미지'로 아들이 화제에 오르자 "왜 지금껏 쌓아온 모든 걸 한꺼번에 무너뜨리려고 하느냐"며 속을 태웠다고 했다.

지금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경차를 타고 서로 존댓말하는 검소하고 엄격한 집안. 지씨는 "수홍이가 삼형제 중 가장 상냥한 둘째 아들이지만, 그동안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억눌려온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스튜디오 녹화를 경험해보니 아들이 힘든 방송을 해왔다는 걸 알게 돼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앉아서 녹화하는데도 발이 퉁퉁 붓더라고요. '오래 서서 방송하다 보면 발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고 했던 아들 말뜻을 이해하게 됐어요."

방송 출연 이후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더 심해졌을까. "어머니가 즐겁게 하루하루 사는 제 모습을 보시더니 오히려 하고 싶은 거 더 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일종의 허가증을 받은 셈이죠."(박수홍) "안 돼. 그래도 오십 넘기 전에 장가가야지. 혼자 나이 들면 외로워서 어쩌려고."(어머니) "좋은 사람 생기면 간다니까요, 엄마."(박수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