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정교과서·사드 반대 소신, 총리 돼도 포기 안할 것"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3일 기자회견은 통상 총리·장관 후보들이 하는 소감 발표와는 달랐다. 정국 상황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히면서 현재의 국정 운영 방식을 대폭 바꾸겠다고 했고, 자신의 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선 긋기'가 명백한 발언도 거리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이 붕괴되지만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것이 최순실 사태로 위기에 처한 박 대통령이 꺼낸 '김병준 카드'가 뜻하는 핵심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는 이날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고 하는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친 듯 한동안 말을 못 잇고 눈물을 닦기도 했다.

◇총리직 수락 왜

김 후보자는 가장 먼저 "'국민적 분노가 들리지 않느냐' '같이 (대통령) 하야를 외쳐도 시원찮을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랬냐'고 많은 분들이 물었다"며 "하지만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을 보고 그대로 있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냉장고 안의 음식은 냉장고가 잠시 꺼져도 상한다. 주인이 바뀌는 기업에서도 회계나 기술 개발은 계속돼야 한다"고 비유하며 "국가도 그렇다. 현재 경제·산업·사회·안보 등 모든 분야의 모든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수락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그가 이념적 대척점에 있는 박 대통령의 '구원 투수'처럼 나선 데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총리직 수락이) 노무현 정신에 부합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도 '국가 운영이 중단돼선 안 된다'고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 운영 방향

김 후보자는 "헌법이 규정하는 국무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총리 권한'에 대해 "경제·사회 정책 전반에 걸쳐 총리의 지휘권을 다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각료(임명제청·해임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경제·사회 정책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니 저에게 전부 맡겨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대통령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동의하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행정학자로서 주장해온 이원집정부제(총리가 내치를 담당)에 준하는 국정 분담을 합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대통령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상황에선 국회와 정당이 국정 동력의 원천"이라며 "개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해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상설적인 협의 기구와 협의 채널을 통해 여야 모두로부터 (국정) 동력을 공급받겠다. 그러는 과정에서 완전하진 않겠지만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될 것"이라며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강화하고, 필요하면 국무총리실 기능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개헌(改憲)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은 옳지 않다"면서 "어디까지나 국회와 국민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 설득 노력

김 후보자는 이번 개각 발표가 야당과 협의 없이 국면 돌파용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 "절차상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의구심과 비판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청와대의 시스템이 일시 무너져 생긴 일이라 생각하지만 저 역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김 후보자는 정치 사안에서 야당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조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대통령 당적(黨籍) 문제가 국정 발목을 잡을 경우엔 탈당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역사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평소 반대 입장에 변동이 있는지 묻자 "제 소신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총리 인준동의안이 국회 통과되기 힘들 것'이란 지적에 그는 "(야당이) 저에 대해 화도 나고 섭섭한 것도 있을 것"이라며 "기회 되는 대로 제 마음을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도 정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저도 불만 없이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날 "(총리로서)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 다하지 못할 경우 결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을 멈췄다. 감정이 울컥하며 한동안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눈물의 의미'를 묻자 김 후보자는 "참여 정부에서 국가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그때 다 (완수) 못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지났다'는 말씀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다시 이런 (권력형 게이트) 사태가 터지면서 저는 대통령이 옳고 그르고 하는 문제보다, 우리 사회에 북핵(北核)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할 만한 것들이 곳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