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아재라뇨? 내 젊음은 이제 시작입니다"

직장인 김태현(41)씨는 지난달 27일 온종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년 전 대학 시절 수강 신청 할 때 '광클'했던 '신공'을 발휘했다. 국내엔 매장도 없는 미국 뉴욕 패션 브랜드인 '슈프림'이 홈페이지에서 공개하는 제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10대들이 입을 법한 후드 점퍼, 맨투맨 티셔츠, 니트 모자 등이다. "생물학적 나이로 '아재'에 포함되는 게 싫어요. 대학 시절 유행하던 거라 그때로 돌아간 느낌도 들고요."

반항·반체제·히피 등을 상징했던 1960~70년대 '저항 패션'이 1990년대 젊음을 대변한 힙합·스케이트 보드 등과 만나 2016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른바 유스 컬처(Youth Culture)다. 하위 문화로 여겨지던 10대 청년 문화가 3040세대에게 인기를 끌면서 시장 주류로 부각되는 현상을 말한다.

◇3040이 뛰어든 10대 문화

유스 컬처는 힙합, 보드 룩 같은 패션 스타일부터 전위미술, 그라피티, 인디 음악 등 경계를 넘나들며 대중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유스 컬처의 주요 소비자이자 생산자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X세대'다. 탈권위주의적이고 개성이 강하며 이전보다 풍요로운 성장기를 거쳐 소비 지향적이다. 39세의 힙합 아티스트인 카녜이 웨스트가 발표한 패션 브랜드 이지(Yeezy)와 카녜이의 스타일리스트들이 만든 '오프 화이트' '피어 오브 갓' 등에 열광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김홍기 패션 평론가는 "1960년대 등장한 유스퀘이크(Youth·젊음과 earthquake·지진의 합성어) 현상의 재현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스 컬처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러시아 출신 두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31)와 뎀나 즈바살리아(35). 구소련이 붕괴될 무렵 태어나 예술·음악·정치 운동 등 다양한 문화 세례를 받은 이들은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거친 언어를 옷에 새긴다. 사진가와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전시회를 하는 등 전방위 문화 활동도 한다.

지난 10월 17일 국내 매장도 없는 '베트멍'이 남양주 덕소에서 연 특별 판매 행사에 2000여명이 몰린 것도 이런 현상의 일환이다. 베트멍의 대표 디자이너는 유스 컬처 붐을 이끈 뎀나 즈바살리아. 행사 관계자는 "월요일이어서 '휴가'를 내고 온 30대 소비자가 상당했다"고 했다.

◇'갱춘기' '마이 붐'… 문화 권력이 된 '젊음'

100세 시대에 접어들며 현대인에게 '젊음'은 각별한 키워드가 됐다. 지난 20년간 남성 평균 수명은 67세에서 77세로 10년이 늘었다. MBC '무한도전'의 멤버 평균 나이도 마흔을 넘겼고, '쉰건모' 김건모와 '아재 클러버' 박수홍이 등장하는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다.

'갱춘기(갱년기+사춘기)'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모범생 틀을 깨고 '제2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는 박수홍은 "갱춘기 아니냐고들 하는데 맞다. 못 해본 것들을 하나하나 도전하면서 살고 있는데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 대표인 황정윤(33)씨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유행한 마이붐(マイブ―ム·my boom,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현상) 트렌드가 한국에서도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 분석 업체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는 "과거에는 원숙함과 성숙함이 주요 키워드였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은 '젊다'는 게 중요해졌다"며 "기존엔 문화 권력이 일부 상류층에 있었다면 IT 발전으로 정보 습득과 확산이 쉬워지면서 이에 익숙한 30·40대들이 신흥 문화 권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스퀘이크(Youthquake)

Youth(젊음)와 earthquake(지진)의 합성어. ‘젊은이의 반란’이라는 뜻으로 1965년 다이애나 브리어랜드 보그 편집장이 만들었다. 비틀스가 등장하고 밥 딜런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노래했으며 마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젊은 층을 사로잡았던 시기다. 기성세대에 저항하면서 히피 패션 같은 하위문화가 주류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