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고 영화가 나… '영아일체' 시대

"이거 우리가 찍은 거 맞지? 진짜 맞지?"

귀신 부르는 놀이를 하다 여고생들이 죽거나 실종된 독서실로 찾아간 인터넷 1인 방송 진행자 'BJ 야광'(류덕환)이 정체 모를 심령 현상에 쫓겨 도망칠 때, 방송 송출을 맡은 '박 PD'(조복래)가 소리친다. 국산 저예산 공포영화 '혼숨'의 한 장면. 이 영화는 히어로물 '닥터 스트레인지'와 코미디 '럭키'가 독주하는 박스오피스에서 지난주 꿋꿋이 흥행 3위를 지켰다. 양방향 인터넷 방송에 익숙한 젊은 세대 코드와 맞는 데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1인칭 시점의 카메라도 흥행에 한몫했다는 평. 이두환 감독은 "1인칭 시점 화면에서 관객은 주인공이 보고 듣는 그대로 이야기에 휘말리게 되는데, 시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갖게 되는 긴장과 공포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했다.

◇시청각 경험의 극한, 1인칭 영화

시점 서술의 경계가 분명한 문학과 달리, 관객이 1인칭 시점으로 영상을 경험하게 하려면 기술적 설계와 카메라 워킹이 뛰어나야 한다. '혼숨' 역시 배우들 연기를 여러 앵글에서 찍은 뒤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몸에 고정한 채 다시 한 번 찍어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영상에 현실감을 입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플레이어 시점에서 진행되는 초현실적인 비디오 게임들, 몸에 달고 찍는 카메라의 보급으로 일상의 근접 촬영에 익숙한 대중은 오히려 3인칭 시점의 객관적 화면에서 리얼리티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더 강렬한 몰입 체험을 주는 1인칭 시점 카메라에 관객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다.

◇영화가 끝나도 계속되는 영화 체험

외계인 몸속으로 정신만 옮겨간다는 설정의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관객이 '내가 저기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영화"라고 했다. 기존 영화엔 감독과 관객 사이에 스크린이라는 경계가 있지만, 1인칭 영화는 스크린 속 공간을 관객이 앉은 극장 안으로 넓혀간다.

카메라를 통한 심리 조작에 능했던 히치콕 감독은 망원 카메라로 이웃을 훔쳐보는 사진작가가 사건에 말려드는 미스터리 영화 '이창(裏窓)'(1954) 등 많은 영화에서 1인칭 카메라를 적극 활용했다.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는 타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설정이 등장한다. 공포 영화 '블레어 윗치'(1999)가 들고 찍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이 보게 한다면, '하드코어 헨리'(2016) 등 최근 영화들은 직접 영화 속으로 들어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듯한 시청각 경험의 극한을 실험한다. 캐릭터의 경험을 자신의 것처럼 몰입하기 시작하면,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책 '입체영화'(2012)를 쓴 프리랜서 PD 임경민씨는 "방송에는 헬멧 등에 달아 쓰는 카메라 사용이 일반화됐고, 더 높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영상 소비자의 태도 변화와 맞물려 1인칭 시점 영상물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