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實話냐고? 그걸 탐구하는 게 내 소설"

소설은 허구다. 사실이다. 아니 반반이다. 소설을 읽을수록 헷갈린다. "어디까지가 진짜냐고요? 그 질문을 위해 쓴 소설이에요. 실화와 픽션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소설." 최근 국내 발간된 장편 '실화를 바탕으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50)이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저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름과 직업,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까지 똑같다. 실제로 델핀은 자전 소설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11)의 대성공 이후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고, 이 소설도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묘사된 주변 정황이 모두 실제 사실을 가리키기에, 읽는 내내 '자전 소설인가?' 의아할 것이다.

그러다 L이 등장하면서 현실과 허구는 묘하게 뒤섞인다. 대필 작가이자, 주인공과 유사한 외모와 습관을 지녔으며, 끊임없이 혼란을 유발하고 종국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자. "L의 이름은 프랑스어 여성 인칭 대명사 'Elle'의 발음에서 따왔어요. 존재가 불명확한 환각일 수도, 진짜 L로 불리는 실존 여성일 수도 있는 거죠." 단어 'Elle'은 이야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유년의 주인공에게 할머니가 묻는 질문 그 자체다. '그런데 얘야, 그 거짓말 진짜니?'

이 의도적 혼란은 '진짜'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이들을 향한 도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TV든 영화든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라고 해야 관심을 가져요. SNS 사진, 리얼리티쇼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연출이 개입한 '제작된 진짜'인데 말이죠." 그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허구로부터 감동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어릴 적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얘기를 들으면, 그게 지어진 걸 알면서도 즐겁게 빠져들곤 했죠. 아직 사람들에게 그런 욕구는 남아 있고, 소설가에게 그 얘기를 들려줄 소명이 있다고 믿어요."

소설 속 L은 "허구 대신 네가 겪은 것을 쓰라"며 주인공을 힐난한다. '넌 소설이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니?… 드라마가 끝났을 때 시청자가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 말이야… 그건 오늘날 책을 읽으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야.' 현실의 델핀은 L을 부정했다. 지난달 국내에도 출간된 2007년 작 '길 위의 소녀'로 그는 독자를 완전히 속여 넘긴 적이 있다. 주인공 노숙자 소녀를 실존 인물처럼 각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승리감을 느낄 때요? 제가 창조한 인물을 놓고 독자들이 이렇게 수군댈 때죠. 걔 요새 어떻게 됐대?"

이번 소설로 지난해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르노도상'과 '고교생이 뽑은 공쿠르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것이다. "프랑스 문단은 아직 엘리트주의가 강해요. 인기와 문학적인 것이 별개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어요." 자전적 소설 '배고픔 없는 나날들'로 데뷔한 2001년, 그는 35세 워킹맘이었다. 퇴근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칠 수 있었다. 쓰면서 행복했지만, 쓸수록 불안해졌다. "모든 소설가에게 근작은 잠재적 유작(遺作)이에요. 또 쓸 수 있을까? 실망하면 어쩌지?" 다행히 유작은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실화를 바탕으로? 아뇨. 이번엔 완전한 허구를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