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덕에 떴지만… 지지하진 않아요"

한국계 미국인인 제임스 선(39·한국명 선우신) 드라마빈스(Dramabeans) 대표는 2007년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한 미국 NBC 프로그램 '어프렌티스(Appren tice)' 시즌 6에 출연해 유명해졌다. 트럼프가 매주 출전자 중 한 명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인기 리얼리티쇼였다. 아시아계가 출연하기는 그가 처음이었다. 제임스는 석 달가량 살아남아 결승에 올랐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표로 나선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사전 투표를 하고 왔어요. (힐러리) 클린턴을 찍었습니다. 클린턴이 좋아서는 아녜요.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트럼프에 대한 앙갚음 아닐까. 7일 서울에서 만난 제임스는 "이방카를 비롯해 자녀를 잘 키웠고 마케팅에 뛰어나고 열정적인 연설가지만 그는 파산, 계약 불이행, 성추행 등 얼룩이 너무 많다"며 덧붙였다. "트럼프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긴장시켜요. 생각을 곧장 말로 옮깁니다. 필터가 없는 사람 같아요. 대통령감이 아닙니다."

제임스는 세 살 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워싱턴대학에서 비즈니스와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미국 사회에는 동양 남자가 조용하고 소극적이라는 편견이 있었다"며 "그걸 깨고 싶어 어프렌티스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왜 네가 선발돼야 하느냐' 물었을 땐 "아시아는 비약적으로 성장 중인데 미국의 새로운 세대가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단다.

어프렌티스에서 우승하면 트럼프의 회사를 1년간 운영할 수 있다. 이 쇼는 "당신은 해고됐습니다(You're fired)!"라는 통보로도 유명하다. 결승전을 앞두고 일어난 조승희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어프렌티스에서 준우승을 하자 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였다. 사업을 해보자는 요청도 쇄도했다. 제임스는 "2만달러(약 2300만원)짜리 강연을 400회나 할 정도로 알려졌고 여러 가지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제임스는 사업가 트럼프가 정계에 진출해 인기를 얻는 까닭에 대해 "처음엔 브랜드를 홍보하려 했을 뿐인데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들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확인하자 '이길 수 있다'는 야망을 품게 된 것"이라며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는 미국적 가치와 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클린턴 또한 신선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인물이라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각 방송사가 지난 봄에 저를 비롯해 역대 어프렌티스 출연자들을 수소문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트럼프의 성희롱 발언을 전했고, 방송 출연분을 뒤져보니 문제가 된 성추행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트럼프는 어프렌티스 덕에 날개를 달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 셈이죠."

제임스가 2007년 창업한 드라마빈스는 한류 콘텐츠를 미국·중국 등에 판매하는 기업이다. 세계 회원이 1400만명에 이른다. 그는 "한국 드라마는 제작 품질, 달콤한 이야기, 연기력 등 세 가지 강점이 있다"며 "'태양의 후예'가 증명했듯이 미국·유럽 등 세계로 생각의 폭을 넓히고 해외 촬영과 영어 대사 등을 확대하면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