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제약산업의 은밀한 유혹 "조금만 더 드시겠습니까?"
입력 : 2016.11.04 23:06
소비주의·물질주의에 포위된 삶
유기농 수퍼조차 설탕·소금 범벅… 빈곤층도 부유층도 피할 길 없어
다이어트만으로는 해결 불가능… 단순하고 느린 삶 함께 추구를
과식의 심리학 | 키마 카길 지음 | 강경이 옮김 | 루아크 | 348쪽 | 1만5000원
오해하지 말 것. 이 책의 과녁은 비만이 아니라 과식이다. 주제가 '비만'이었다면, 먹거리와 몸무게 그리고 다이어트로 영점(零點)을 조준했을 것이다.
'과식의 심리학'은 과잉 식사가 단순히 결연한 '다이어트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신이 부지불식간에 초과 섭취하는 설탕과 소금과 정제 탄수화물은, 현대의 소비지상주의 그리고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의 치밀한 전략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 워싱턴대학 타코마 캠퍼스에서 음식 심리학을 가르치는 키마 카길(45) 교수. 그의 추상적인 '삼차 방정식'을 구체화하면, 세 가지 변수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의 디즈니 월드 연설, 유기농 수퍼마켓으로 이름난 홀푸드(Whole Food)의 초콜릿 입힌 프레첼, 그리고 비영리단체인 줄 알았더니 특정 제약회사 약품을 소개하던 가짜 민간 단체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자신만의 다이어트 비법이라 홍보하는 온갖 실용서나, 의지와 훈육으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설파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을 도구로 삼은 '과식의 심리학'이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카길 교수는 9·11 테러 직후의 부시 대통령 연설을 예로 든다.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에 가라. 가족을 데리고 가서 우리가 바라는 삶을 즐겨라." 충격과 상실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일상의 행복을 되찾는 일, 말하자면 돈 쓰는 일이라는 취지였다. 과거에는 개인의 소비와 국가의 안정이 관련이 없었지만, 최근 몇십년 사이 돈 쓰는 일은 '애국'이 되어버린 세상. 부유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빈곤층도 모두 '소비문화' 한복판에서 살아간다. '과식'은 단순히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주의의 거역 불가능한 유혹 중 하나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 것. 이 책의 과녁은 비만이 아니라 과식이다. 주제가 '비만'이었다면, 먹거리와 몸무게 그리고 다이어트로 영점(零點)을 조준했을 것이다.
'과식의 심리학'은 과잉 식사가 단순히 결연한 '다이어트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신이 부지불식간에 초과 섭취하는 설탕과 소금과 정제 탄수화물은, 현대의 소비지상주의 그리고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의 치밀한 전략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 워싱턴대학 타코마 캠퍼스에서 음식 심리학을 가르치는 키마 카길(45) 교수. 그의 추상적인 '삼차 방정식'을 구체화하면, 세 가지 변수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의 디즈니 월드 연설, 유기농 수퍼마켓으로 이름난 홀푸드(Whole Food)의 초콜릿 입힌 프레첼, 그리고 비영리단체인 줄 알았더니 특정 제약회사 약품을 소개하던 가짜 민간 단체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자신만의 다이어트 비법이라 홍보하는 온갖 실용서나, 의지와 훈육으로 통제가 가능하다고 설파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을 도구로 삼은 '과식의 심리학'이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카길 교수는 9·11 테러 직후의 부시 대통령 연설을 예로 든다.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에 가라. 가족을 데리고 가서 우리가 바라는 삶을 즐겨라." 충격과 상실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일상의 행복을 되찾는 일, 말하자면 돈 쓰는 일이라는 취지였다. 과거에는 개인의 소비와 국가의 안정이 관련이 없었지만, 최근 몇십년 사이 돈 쓰는 일은 '애국'이 되어버린 세상. 부유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빈곤층도 모두 '소비문화' 한복판에서 살아간다. '과식'은 단순히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주의의 거역 불가능한 유혹 중 하나라는 것이다.
첨가물 없는 자연 식재료 위주로 먹는다면, '질 낮은 과식'의 위험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카길 교수는 고급 유기농 식품만 파는 것으로 이름난 홀푸드 마켓을 예로 든다. 그는 초등생 소녀 시절로 시곗바늘을 돌린다. 1980년대의 텍사스 오스틴. 고향 집에서 겨우 몇 블록 떨어진 오스틴 12번가에 이 유기농 마켓 1호점이 소박한 규모로 문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파슬리와 허브 향만 가득하고, 설탕과 소금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던 마켓. 하지만 다시 30년 뒤인 2014년. 1호점 옆에 성대하게 새로 지은 홀푸드 마켓 본점에는 이전과 달리 '고급 정크푸드'가 가득하다. 캐러멜을 입힌 견과류, 유기농 감자칩이라 홍보하는 케틀칩, 초콜릿을 입힌 프레첼 등등. 설탕과 소금 뿌린 가공식품이 곳곳에 넘친다. 결국 근사하게 포장된 '비싼 정크푸드'. 이윤 추구가 최고의 목표인 자본의 속성이 빚은 참사요, 필연적 귀결이었다.
제 9장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이라는 짝패'에서는, 이 두 산업의 공생을 이야기한다. 과식과 과체중을 치료한다는 많은 약품이 그들의 '공약'과 달리 실제로는 계속 과식과 과소비의 쳇바퀴를 돌리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심지어 가짜 재단과 가짜 민간단체 사례도 있다.
1998년 우울증 치료제의 대표 상품 격인 프로작의 대항마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가 모방 약품 팩실을 만들었을 때, 두 개의 민간단체가 뜬금없이 설립인가를 신청했다. 각각의 단체명은 사회불안장애연합과 공포로부터의 자유. 폭식·불면 등의 불안을 겪고 있는 대중의 건강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라디오와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문제는 광고를 보고 문의 전화를 하면 한결같이 '팩실'을 추천했다는 것. 폭식과 불면을 없애는 사실상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설명과 함께. 제대로 된 신약 개발보다 훨씬 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꼼수 마케팅'이었다.
이쯤 되면, 단지 음식을 적게 소비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우리가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에 포위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과 번영과 여유를 즐기면서 '과잉' 소비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100% 정답은 없다. 카길 교수의 제안은, 음식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덜 소비하도록 노력하는 태도에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가공할 만한 속도와 규모에 대한 반성으로 제시되는 모든 노력. 가령 느린 삶, 자발적 단순함, 슬로푸드, 작은 집…. 이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 세계다. 구호는 천천히 신중하게. 설탕 가득한 머핀 대신 오트밀을 아침식사로, 바닐라 라테 대신 설탕 안 넣은 라테를 마시는 것도 그 한 예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
제 9장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이라는 짝패'에서는, 이 두 산업의 공생을 이야기한다. 과식과 과체중을 치료한다는 많은 약품이 그들의 '공약'과 달리 실제로는 계속 과식과 과소비의 쳇바퀴를 돌리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심지어 가짜 재단과 가짜 민간단체 사례도 있다.
1998년 우울증 치료제의 대표 상품 격인 프로작의 대항마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가 모방 약품 팩실을 만들었을 때, 두 개의 민간단체가 뜬금없이 설립인가를 신청했다. 각각의 단체명은 사회불안장애연합과 공포로부터의 자유. 폭식·불면 등의 불안을 겪고 있는 대중의 건강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라디오와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문제는 광고를 보고 문의 전화를 하면 한결같이 '팩실'을 추천했다는 것. 폭식과 불면을 없애는 사실상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설명과 함께. 제대로 된 신약 개발보다 훨씬 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꼼수 마케팅'이었다.
이쯤 되면, 단지 음식을 적게 소비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우리가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에 포위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과 번영과 여유를 즐기면서 '과잉' 소비의 유혹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100% 정답은 없다. 카길 교수의 제안은, 음식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덜 소비하도록 노력하는 태도에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가공할 만한 속도와 규모에 대한 반성으로 제시되는 모든 노력. 가령 느린 삶, 자발적 단순함, 슬로푸드, 작은 집…. 이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 세계다. 구호는 천천히 신중하게. 설탕 가득한 머핀 대신 오트밀을 아침식사로, 바닐라 라테 대신 설탕 안 넣은 라테를 마시는 것도 그 한 예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