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1.07 14:43

호남선 열차 타고 가는 장성 갓바위와 입암산성 여행

11월이 되면 유독 많은 이들이 찾는 산이 있다. 전북 정읍과 전남 장성에 걸쳐 솟아 오른 내장산이 바로 그곳이다. 내장산은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 산행지다. 진입로 주변은 물론이요, 온 산을 뒤덮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정말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모두 빨갛게 변하는 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사실 단풍철의 내장산은 ‘인산인해’ 그 자체다. 특히 주말이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행락객들로 산 입구까지 이어진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할 정도다. 어떤 날은 등산로 입구까지 이동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곳이 바로 내장산이다. 하지만 같은 국립공원 권역에 자리하고 있는 입암산은 단풍철에도 상대적으로 덜 혼잡스럽다. 물론 주말에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내장사나 백양사 입구보다는 덜하다.

입암산의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 기점인 남창계곡은 호남선 백양사역에서도 가깝다. 백양사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덜 걸린다. 오래된 유적지인 입암산성과 고산 습지의 특이한 가을 풍광, 서해까지 조망되는 멋진 전망대 갓바위를 함께 돌아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입암산은 열차를 이용한 가을 여행과 산행에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1 갓바위 전망데크에서 본 방장산 방면. 2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입암산 골짜기.
1 갓바위 전망데크에서 본 방장산 방면. 2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입암산 골짜기.
첫째 날 : 열차 타고 가서 입암산 오르기

입암산 열차 산행을 위해 용산역에서 백양사역으로 가는 직통열차를 검색했다. 백양사역으로 바로 가는 열차는 무궁화호 8편이 전부였다. 게다가 용산에서 백양사역까지 거의 4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KTX로 익산역까지 이동한 뒤 무궁화호로 갈아타면 가장 빠를 경우 2시간 10분 만에 갈 수 있었다. 백양사역까지 가는 데는 열차가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빨랐다. 길 막히는 주말이라면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물론 원하는 날의 열차 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빠른 예약이 필수다.

용산역에서 08시 53분 출발 목포행 KTX를 타고 익산역(10:07 도착)으로 간 뒤, 무궁화호(10:23)로 갈아타고 백양사역에 내리면 오전 11시 3분이다. 여기서 택시로 입암산 탐방로 입구인 남창계곡 전남대수련원까지는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정오가 되기 전에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탐방로에 몸을 말리러 나온 뱀들이 많으니 산행할 때 물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산길 입구에서 만난 내장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이 산행을 시작하는 취재진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입암산성으로 오르는 탐방로 주변에는 수북이 쌓인 돌무더기가 많아 뱀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다보니 비온 뒤 뱀의 출몰이 많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오후로 접어들며 건조한 가을 날씨 덕분인지 산길을 걷는데 똬리를 튼 뱀과의 만남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전남대연수원을 지나 넓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양 옆을 메운 울창한 삼나무 숲이 눈길을 끌었다. 하늘을 찌를 듯 힘차게 솟은 침엽수림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웠다. 마치 캐나다 로키의 한 골짜기를 우리 땅에 옮겨 놓은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숲이 잘 가꿔져 있었다.

국립공원 지역이라 그런지 산길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바닥에 돌을 깔아 토양의 유실을 막았고, 계곡엔 다리를 놓아 물이 불어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라 관리 상태가 좋았다. 산길 초입의 남창탐방지원센터를 지나 500m쯤 가니 장성새재로 연결되는 길이 갈려나가는 삼거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왼쪽의 입암산성 방면 탐방로로 방향을 잡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 25분쯤 걷다 보니 계곡이 갈라지는 은선동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른쪽 계곡길을 따르면 입암산성으로, 왼쪽 골짜기는 은선동 계곡을 거쳐 갓바위 서쪽의 안부로 연결된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입암산 정상인 갓바위에 오르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입암산성을 경유하는 코스가 경사도가 완만해 산행이 수월한 편이다.

1 돌을 깔아 평탄하게 다져놓은 입암산 탐방로를 걷고 있다. 2 탐방로 주변에 쑥부쟁이 꽃이 만발했다.
1 돌을 깔아 평탄하게 다져놓은 입암산 탐방로를 걷고 있다. 2 탐방로 주변에 쑥부쟁이 꽃이 만발했다.
삼거리의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암산성을 향해 출발했다. 고도가 높아지며 산길 주변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었다. 바람에 떨어진 마른 잎이 바닥에 깔렸고, 길옆에 선 나무에 붉게 물든 단풍잎이 하나 둘 매달려 있었다. 아직 완벽한 가을빛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풍경이지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점차 가팔라지는 산길에서 땀을 흘리며 하얀 물줄기를 매단 계곡의 와폭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다고 숨이 벅찰 정도로 힘든 구간은 없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높은 계단만 잘 극복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코스였다. 느긋하게 입암산의 가을 흔적을 찾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입암산성 남문이 코앞에 나타났다.

계곡물이 가운데로 흐르는 남문은 입암산성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복원된 시설이지만 고목과 어우러진 산성의 돌벽이 뿜어내는 운치가 대단했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인 동시에 물길인 남문을 통과해 산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곽 위로 올라서니 주변을 감싸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입암산성은 우리 땅의 수천 년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유적지다. 높은 산중에 형성된 넓고 평탄한 지형 덕분에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 있었다. 삼한시대에 축성되기 시작해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이곳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전과를 올렸고, 동학혁명군 전봉준이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산성으로 들어서면 산길은 거의 평지가 된다. 지금은 수풀이 가득하지만 산성 내에 연못을 만들기 위해 쌓은 보와 관아 등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발 600m에 육박하는 험한 산중에 자리한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 신기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 살아 마을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라 한다.

입암산성은 물이 풍부한 곳이다. 비가 내린 직후라 그런지 산길 주변은 습기가 가득했고 땅은 질척거렸다. 심지어 북문 가까이 가자 바닥 전체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속에 잠긴 억새밭과 숲 분위기가 일본산의 고산 습지와 많이 닮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풍광이었다. 이 입암산성 습지 구간에는 넓은 나무데크 탐방로를 깔아 발을 적시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산행 중에 만난 삼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즐기고 있는 취재팀.
산행 중에 만난 삼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즐기고 있는 취재팀.
1.5km에 달하는 산성 안쪽의 탐방로를 통과하니 능선 위에 자리 잡은 북문이 나타났다. 북문 밖의 북쪽 산 사면은 거의 절벽 같은 급경사였다. 이곳이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지형이었다.

북문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능선을 타고 갓바위로 이동했다.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되다가 거친 바위지대가 나타나며 계단이 시작됐다. 인위적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거북바위를 지나면 갓바위 정상이 코앞에 닿을 듯 가까웠다.

갓바위 정상에 오르면 정읍과 부안 등 북서쪽 조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드넓은 정읍과 고창 평원 뒤로 불꽃처럼 솟아 오른 변산반도와 선운산이 한눈에 든다. 그 산줄기 사이로 파고 든 서해와 곰소항 또한 또렷하게 보인다. 널찍한 전망데크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갓바위에서 남서쪽으로 능선을 타고 1km 정도 내려서면 능선상의 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북쪽 사면으로 내려서는 길은 노령역으로 이어지고, 계속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이어진 길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은선동 삼거리로 다시 돌아가려면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남동쪽 계곡길을 따라야 한다.

은선동 삼거리로 내려서는 계곡길 역시 평탄하고 조용했다. 이 지역 역시 입암산성처럼 수량이 풍부해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멋진 계곡을 따라 걷는 즐거움이 남다른 구간이었다. 능선상의 사거리에서 1.8km 정도 내려서니 다시 은선동 삼거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입암산은 우뚝 솟은 갓바위의 거친 이미지와 달리 부드러운 산길을 간직하고 있었다. 단풍 구경을 하면서 여유롭게 가을 산행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붐비고 번잡한 내장산이나 백암산에 지쳤다면, 올 가을은 조금은 수수한 입암산으로 떠나길 권한다.


1 입암산 갓바위 정상석. 2 백양사 쌍계루와 백학봉. 3 장성 영화마을 입구의 안내판.
1 입암산 갓바위 정상석. 2 백양사 쌍계루와 백학봉. 3 장성 영화마을 입구의 안내판.

둘째 날 : 입암산 주변 관광하고 귀가

입암산 산행을 마치고 산 입구 숙소에서 하루를 묵을 경우 주변의 가까운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다음날 일정을 잡았다. 열차를 이용하면 장거리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 시간 낭비가 심하다. 인원이 4명 이내고 목적지가 멀지 않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입암산 주변의 가까운 관광지로는 우선 장성호를 꼽을 수 있다. 이 호수는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장성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졌다.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을 막아 모인 물을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나주시, 장성군, 함평군 등에 공급하고 있다. 각종 민물고기가 서식해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으로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입암산 입구에서 장성호 상류의 관광지까지는 약 6km 거리, 차로 약 10분 걸린다.  이곳에는 야영장, 가족유희장, 취사장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수상스키와 카누 등 각종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관광지 북쪽 언덕에 조성된 장성호 문화예술공원에는 ‘임권택 시네마테크’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감독 임권택 관련 자료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지만 아직 정식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없다. 하지만 문화예술공원의 조형물을 구경하고 정상의 전망대에서 장성호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장소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성호.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성호.
장성호 관광지에서 백암산 입구 매표소까지는 약 6km 거리, 택시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이곳에는 백제 무왕(632년) 때 창건했다고 전하는 고불총림 백양사가 있다. 이 사찰의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은 지방문화재로 소요대사부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가을 단풍은 물론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이 자랑거리다. 백양사 주변에는 5,0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삼림욕을 즐기기도 좋다. 이곳은 비자나무 서식지의 북방한계선이기도 하다.

장성 축령산(621.6m)의 숲 또한 좋은 볼거리다. 축령산 일대에는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게 조성돼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장성군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의 조림지 총 면적은 1,148ha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다. 전국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조림지로 독일의 흑림(黑林)에 비유될 정도로 숲이 짙고 아름답다. 축령산 숲 북쪽의 금곡영화마을도 주목할 만한 여행지다.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을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백양사역에서 금곡마을까지 약 12km 거리, 25분 정도 소요된다.

백양사역에서 6.5km 거리의 방장산자연휴양림은 숙박지로 괜찮다. 울창한 숲과 뛰어난 전망으로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주말 예약이 어렵고 자가용이 없으면 접근이 불편한 것이 단점이지만 가격 대비 시설과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또한 휴양림에서 이어진 여러 가닥의 임도가 나 있어 걷기나 산악자전거(MTB)를 즐기기에도 좋다. 시설 예약은 인터넷(www.huyang.go.kr)으로만 받는다.

휴양림에서 묵고 다음날 방장산에서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단풍이 물든 울창한 숲과 조망이 멋진 전망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여유 있게 가을날을 즐긴 다음 귀가하는 일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픽] 입암산 개념도
입암산 갓바위

641m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산행 거리 10.3km
산행 시간 4시간 10분
산행 난이도

[그래픽] 입암산
찾아가는 길

서울 용산역에서 KTX, 새마을호, 무궁화 열차가 운행한다. 백양사역은 무궁화호 열차만 정차한다. 용산역 출발 KTX 열차(08:53, 10:55, 14:05, 15:20, 16:50)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려 무궁화호(10:23, 10:48, 12:35, 15:48, 17:00, 18:50)로 갈아타고 백양사역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열차를 환승할 경우 2시간 10분에서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요금은 KTX 3만800원, 무궁화호 3,900원.

백양사역에서 내려 입암산 입구인 남창계곡까지 농촌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백양사역 앞 사거리버스터미널에서 42번 버스(08:20, 10:00, 13:50, 16:50)를 타고 내장산국립공원 남창지구에서 내리면 된다.

약 30분 소요. 역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이용하면 약 15분이면 남창계곡까지 이동할 수 있다. 요금 1만7,000원 선.

문의 북이면 개인택시 061-392-9090.

자가용은 서울·대전 방면에서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가 ‘고창·백양사’ 방면 우측 길로 들어선다. 이후 4km 가서 남창계곡 방면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해 들어간다. 여기서 직진하면 장성호를 지나 약수교 진입 전에 좌회전해서 백양사로 갈 수 있다.

숙박(지역번호 061)

입암산 등산로 입구인 남창계곡에 펜션과 민박이 모여 있다. 산골펜션(010-2285-8059, 010-9123-8059), 사계절온천펜션(394-0014), 남창계곡펜션(010-7477-7343, 010-2683-7343) 등. 주차장 근처 남창계곡 오토캠핑장(394-5535)은 거대한 암벽들이 둘러싼 호젓한 분위기가 일품인 야영장이다. 이곳에서 캠핑을 겸한 산행도 가능하다.

맛집

백양사역 앞 북이면 소재지에 식당들이 많다. 농협 사거리 부근의 고향의맛(394-5777)은 얼큰한 콩나물 국물에 말아내는 순대국밥이 별미다. 이 집 바로 앞의 향숙이네식당(392-0809)은 황태찜과 정식으로 유명하다. 근처 장성홍길동한우(392-9393)는 암소한우만을 제공한다.

백양사 앞에 밀집한 식당들은 수준급의 산채정식을 차려낸다. 정읍식당(392-7427), 백양전통식당(392-7406), 전주전통식당 (392-7418), 대성산채식당(392-7576), 광주식당(392-744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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