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대박, 이젠 없다… 비상장 진주 찾아라"

은행 이자는 '제로'(0)에 가깝고, 시중에 돈은 넘치지만 투자처는 마땅치 않다. 국내 주식시장은 벌써 6년째 코스피 지수가 1800~2000선 초반을 오가는 '박스피'(박스+코스피)에 갇혀 있고, 과열 양상의 부동산시장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재테크 환경이 총체적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글로벌 벤처투자업계에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요즈마그룹의 이갈 에를리히(Erlich·76) 회장에게 저금리·저성장 시대를 헤쳐나갈 묘수를 물었다. 요즈마그룹은 에를리히 회장의 주도로 1993년 이스라엘에서 벤처 활성화를 위해 민간과 정부가 각각 6대4의 비율로 2억6500만달러의 출연금을 조성해 만든 글로벌 벤처캐피털 회사다. 1997년 민간 벤처캐피털 회사로 전환해 86개의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거나 글로벌 기업에 매각했고 평균 수익률은 34%에 달한다.

에를리히 회장은 본지가 12월 2일 개최하는 2017 대한민국 재테크 박람회에 참석해 '세계경제 대격변 시대, 투자 패러다임의 대변혁: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라'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에 나선다. 그는 투자의 길을 묻는 말에 "상장된 큰 기업들에 투자해 돈을 버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며 투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기관 투자자뿐 아니라 개인들도 유망한 비상장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 후 대박은 애플·구글·MS가 마지막 세대다"

그는 기업공개(IPO) 효과가 2000년대 중반부터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기업은 IPO 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페이스북(2012년)이나 트위터(2013년) 등 비교적 최근 상장된 기업들은 IPO 이후의 가치 상승률이 과거와 비교해 완만하다는 것이다. 에를리히 회장은 "페이스북이 만약 과거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수준의 성장을 이루려면 시가총액이 45조달러 정도는 돼야 한다"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배에 가까운 규모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상장 후 기업들의 성장률이 둔화되는 근본 원인으로 '4차 산업혁명'을 꼽았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IT(정보기술)와 결합한 미래의 산업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온라인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베일에 쌓여 있던 비상장주들도 투명성이 확보되기 시작했다"며 "옛날 같았으면 기업이 상장 후에야 유치할 수 있던 자금이 투명성을 확보한 유망 기업의 경우 비상장 단계에서부터 흘러들고 있다"고 말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비상장 기업을 발굴해 2억6500만달러에 불과하던 펀드 규모를 10년 만에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로 불렸다"며 "요즈마펀드의 최고 수익률은 123%에 달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투자처에서 벗어나라… 크라우드 펀딩 투자 등 새 길 찾아라"

그렇다면 전문 투자자나 기관이 아닌 일반인이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에를리히 회장이 추천한 투자처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창의적 아이디어나 사업 계획을 가진 기업이 다수의 소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올 초부터 투자와 동시에 기업의 지분을 얻게 되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에를리히 회장은 “금융 선진국인 영국은 2013년에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기업의 72% 정도가 펀딩 당시보다 더 높은 기업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며 “크라우드 펀딩 등 비상장 기업 중심의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크라우드 펀딩 외에 개인이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스타트업 전용 거래시장(KSM)’을 추천했다. KSM은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기업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으로 오는 14일 한국거래소 산하에 개설된다.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기업은 별다른 조건 없이 전용 시장에 등록할 수 있으며, 내년 초부터는 주식 발행 후 1년간 보호예수를 거쳐야 하는 전매제한 규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에를리히 회장은 “간접 투자방식으로는 상장 주식과 비상장 주식이 혼합된 펀드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혁신적이고 기술력을 갖춘 비상장 기업이 주축을 이루는 창업 국가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현재의 글로벌 기업들은 규모가 비대해져 혁신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에 특화된 비상장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해 살아남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