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감소→경쟁력 저하→매출 감소 악순환… 힘 못 쓰는 '수출 대표 선수'

IT(정보통신기술)와 자동차·조선(造船), 화학·철강 등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들이 하나같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얼마 전만 해도 막대한 매출을 기록하며 경제를 떠받치는 업종이었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호령했다. 그런데 지금은 매출이 줄고 일부 기업은 구조 조정 한파에 떨고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주력 산업 매출 증가율 中·日에 뒤져

먼저 봐야 하는 지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주요 4개국 산업별 매출 증가율과 영업 이익률을 살펴보자.

전기·전자업에서 국내 기업 2010년 매출 증가율은 25.6%로 4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하지만 2011년 매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그때만큼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업에서도 2010년 한국은 30%가량 매출 증가율로 중국(42.0%)에 이어 4개국 가운데 2위였다. 하지만 2014년에는 매출 증가율이 2.2%로 중국·일본에 뒤졌다.

기업 수익성을 나타내는 영업 이익률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다. 전기·전자업에서 미국 영업 이익률은 10~20%대인 반면, 한국은 1~5%대로 4개국 가운데 최하위다. 자동차업에서도 국내 제조 기업은 2010년 이후 영업 이익률이 부진하면서 2011년 4.98%를 기록했으나 2014년 4.71%를 나타내고 있다.

주력 산업인 전기·전자와 자동차 산업 매출액 증가율과 이익률이 경쟁국에 비해 뒤진다는 건 위기의 한 단면이다. 화학과 조선, 철강 역시 성장성·수익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 맹추격에 투자 부진까지 겹쳐

국내 주력 산업이 침체에 빠진 가장 큰 배후는 중국이다. 중국 기업은 이미 단순 제조업에선 한국을 앞섰다.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섬유·가전 조립 등에서 한국을 추월했고, 최근엔 하이테크 산업에서도 수익성과 성장성, 특허출원, 해외 인수합병(M&A) 등에서 한국 기업과 격차를 빠르게 줄여가고 있다.

 

정부 주도로 반도체·디스플레이와 자동차 등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 과거 한국이 자랑했던 '압축 성장'을 재현하고 있다. 더 유리한 요소는 내수 시장이다. 기업 처지에선 신제품을 시험하고 소비해줄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보다 생존 여건이 좋을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부품 사용 의무화 정책까지 펴면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한국 기업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형편이다.

'국가대표'로 분류되는 한국과 중국 30대 대기업을 비교해 보면, 중국 기업은 한국보다 성장성·수익성이 아직은 낮지만, 추월 속도는 빠르다. 영업 이익률은 2014년 중국 30대 기업이 13.82%로 한국(6.82%)의 2배 이상이다. 매출 증가율도 중국 30대 기업 평균은 12.86%로 한국(5.45%)을 크게 앞서 있다.

중국 추격을 따돌리려면 우리 기업들도 대대적 반격을 해야 하지만 설비투자를 포함한 기업 투자는 최근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우리 기업 투자 증가율은 2001~2008년 5.7%로 나타났지만, 2009~2015년 1.2%로 크게 낮아졌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니, 생산성과 경쟁력이 낮아지는 건 당연하다.

또 제조업 투자 내용 면에서도 혁신 역량이 하락하고 있다는 징후도 발견된다. 최근 기존 제품에 대한 설비 확장 투자의 비중이 연구개발(R&D)이나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 비중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예전에 만들던 것을 계속 생산할 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진 것이다. 그동안 화려한 실적에 취해 자만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출 역군에서 걸림돌로 전락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주력 산업 수출로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주력 산업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0년 중반 이후 최근까지 중국이 부품 소재를 국산화하고 있고, 우리 주력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그동안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주력 품목을 중심으로 세계시장 경쟁력을 확보해 왔으나, 최근에는 주력 품목 수출이 오히려 더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증가율보다 한국 13대 주력 품목 수출 증가율이 더 부진하다는 것이다.

2011~2015년 우리나라 13대 품목(반도체·자동차·선박·석유화학·무선통신 기기·철강 등) 수출 비중은 3.6%포인트 하락하며, 일본(-0.9%포인트)과 중국(-1.4%포인트), 미국(-2.9%포인트)보다 감소 폭이 더 컸다. 더구나 이 13대 주요 수출 품목 중 반도체, 일반기계, 컴퓨터를 제외한 10개 품목에서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평판 디스플레이, 조선과 철강, 석유 화학 관련 제품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리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우리 기업도 경쟁력을 향상시킬 혁신적 전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핵심 원천기술 확보와 주력 산업의 스마트화·서비스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같은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해 규제 개혁을 포함하는 제도 정비를 서두르는 게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정치·경제·사회 구조에서 새로운 변화를 촉구한다. 고용 환경이 바뀌고 직무 역량은 새롭게 정의된다. 공유경제와 온디맨드 경제가 주도하는 기술 기반 플랫폼 사업이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전략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맞춘 인재 양성을 위해 산학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