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도 산만하고 충동적… 나도 ADHD?

"어릴 때는 1+1 같은 간단한 산수도 못했고, 커서도 일을 하면서 자주 실수를 했지요. 내가 저능아인 줄 알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겪고…."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지난 3일 만난 박가영(가명·여·28)씨는 대화 중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상대방의 말을 끊으며 자기 생각을 얘기하느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며 자신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라고 소개했다.

◇성인 ADHD 환자 급증

ADHD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질병이다. 흔히 아이들이 잘 걸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성인 환자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3년 1만8967명이던 ADHD 환자가 2015년 5만5296명으로 세 배가량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20세 이상 성인 환자는 166명에서 4978명으로 30배 가까이 폭증했다.

전문가들은 "성인 ADHD 환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방 대학을 나와 23세 때 방송국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는 박씨는 "촬영팀을 경기도 광주로 안내해야 하는데 광주광역시로 보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잦은 업무 실수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다"며 "지난 2014년 ADHD 진단을 받고 처방약을 먹으니 '머릿속 안개가 걷힌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후반이 돼서야 자신의 병을 정확히 알았다는 것이다.

30대 후반 남성 A씨는 도박 중독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ADHD 진단을 받았다. 이소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는 "아이들은 부산하고 과장된 행동을 절제하지 못해 ADHD 딱지를 붙이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성인 환자는 전형적인 ADHD 증상이 잘 안 보인다"면서 "오히려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 같은 다른 문제로 와서 ADHD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신이 ADHD인 줄 모르고 지내는 성인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대·서울아산·삼성서울병원 등 연구진들은 지난 2011년 우리나라 18세 이상 60세 미만 성인 61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1%가 ADHD 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성인(3100만명) 전체로 치면 약 34만명이 ADHD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소희 이사는 "해외 논문을 보면 성인의 2~4%가 ADHD라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ADHD 환자도 건강보험 적용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4~17세 아동·청소년 11%가 ADHD인데 이 중 60~80%가 성인이 돼서도 증상이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150만명이 넘는 성인 환자가 ADHD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일본에서도 최근 성인 ADHD 환자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면서 "ADHD 환자를 자폐증 환자 수준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ADHD 환자는 사회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2011년 해외 학술지 '정신의학연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ADHD 환자는 보통 사람보다 실업률이 3.55배 높다.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알코올 중독(1.97배), 흡연 중독(2.81배), 도박 중독(8.43배)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든다. ADHD가 있는 운전자 30%는 면허정지나 취소를 경험했고, 속도위반 딱지는 전체 평균보다 2배 많이 떼는 등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조사가 있다. 문제는 환자가 스스로 ADHD라는 걸 몰라서 진단을 못 받거나, 병원에서 ADHD가 아닌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다른 정신질환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ADHD 진단을 받으면 보통 약물치료와 행동 치료를 병행하는데, 특히 약을 먹으면 주의력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