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일상 보여달랬더니 승마장 데려가"

"1억4000만명이 사는 나라에 개봉관 20개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러시아 관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을 통해 러시아 사회를 되돌아보는 기회도 될 겁니다."

북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를 만든 비탈리 만스키(53) 감독은 지난 8일 "개봉 첫 주 만에 러시아에서 다큐멘터리의 평균 관객과 비슷한 수의 관객을 이미 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구(舊)소련 출신인 만스키 감독은 현재 라트비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날 '아트독페스티벌'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다.

만스키 감독은 1년여 논란 끝에 '태양 아래'가 러시아 관객을 만나게 돼 들뜬 모습이었다. 2015년 11월 이 영화가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나이트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북한은 러시아 정부에 공식 항의하며 상영 금지를 요구해 왔다. 모스크바의 8개 영화관이 개봉 예정일 직전에 상영을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만스키 감독은 "월요일(7일)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극장에 가서 티켓이 얼마나 팔리는지 몰래 지켜봤다"며 "주로 SNS를 통해 반응을 살피는데 70%는 나의 의도대로 영화를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영화에 불만을 토로하는 나머지 30% 중에는 내가 실제 북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조작한 것이라는 관객도 있더군요.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촬영 기간이 짧다면 짧을 수 있겠지만 북한 사회를 속속들이 봤다고 자부해요. 촬영 장소 중엔 북한에서 5년 이상 거주한 러시아 외교부 직원들도 가보지 못한 장소도 있었습니다."

'태양 아래'는 만스키 감독이 2014년 1년여에 걸쳐 3차례 북한을 방문해 만든 영화다. 주인공 진미(당시 8세)가 소년단에 가입해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당초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담을 예정이었으나 북한 당국이 모든 것을 조작하자 그 통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비판 영화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 5월에는 영화에 출연했던 진미가 북한 노동당 제7차 군중대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됐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 정부가 진미를 체제선전에 역이용하고 이제 진미는 '행복한 북한 어린이'의 상징이 됐다"며 "이런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진미와 가족이 안전하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영화에는 북한 당국이 주민의 생활을 통제·조작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스키 감독은 "제작진이 '북한 주민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 달라'고 하자 북한 측이 요청 2개월 후 우리를 승마장으로 데려갔다. 승마장에는 진미 가족과 북한 사람들이 승마복을 빼입고 말을 타고 있었는데, '우리 주민들은 여가 시간에 승마를 한다'고 설명하더라"고 전했다. "2개월 동안 주민에게 승마복을 만들어 입히고 승마를 훈련시킨 겁니다. 너무 황당해서 촬영을 거부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북한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놓쳐서 안타까워요."

그는 "북한의 비핵화가 진미 같은 어린이들에게 자유를 돌려줄 수 있는 길"이라면서도 "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태양 아래'를 만들면서 (북한의 변화가) 너무도 힘들고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과거 나에게 북한은 북극이나 남극처럼 '닿기 힘든' 곳으로 느껴졌지만 이젠 화성만큼이나 '닿기 불가능한' 나라로 더 멀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