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상상력, 색다른 마법을 부리다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마법사, 거인, 요정, 기기묘묘한 동물들…. 2001년부터 11년간 '해리 포터' 영화 8편을 통해 보고 또 봤던 소재 아닌가. 그런데 16일 개봉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스핀오프(spin-off·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에서 파생된 이야기)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감독 데이비드 예이츠)은 그런 선입견을 상쾌하게 깨뜨린다. 또 한 번 믿기 힘든 시각적 충격이다. 매일 꾸는 꿈이 다르듯 영화적 상상력의 지평 또한 한없이 넓어지고 있다고, 이제 새로운 마법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1926년 미국 뉴욕,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건물과 거리를 파괴하는 일이 테러처럼 빈발한다. 마침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가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사라진 상황. '미합중국 마법의회'(MACUSA)가 마법 세계의 노출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할 때 세계 각지를 돌며 신비한 동물을 수집하고 보호하는 영국 마법사 '뉴트'(에디 러디메인)가 뉴욕에 온다. 실수로 이 동물들이 뉴욕 거리에 놓여나면서 마법의회는 뉴트와 친구들을 이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모두가 걷잡을 수 없는 사건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다. 마법의회의 흑인 여성 대통령은 신비한 동물들을 신속히 잡아들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노마지(일반인을 부르는 미국식 명칭. No Magic의 준말)는 위협을 느끼면 공격하니까. 마법 세계가 노출되면 그건 곧 두 세계 사이의 전쟁이에요."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와 친구들이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교과서 삼아 배우던 책. 이 영화는 그 책 저자의 숨겨진 이야기다. 때론 귀엽고 깜찍하고, 때론 웅장하고 화려한 '신비한 동물'들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오리너구리를 닮은 외모에 보석과 황금에 욕심이 많은 '니플러'는 개그 담당. 배우들은 공간의 크기에 맞춰 몸이 늘거나 줄어드는 '오캐미'를 찻주전자에 집어넣기 위해 바퀴벌레를 주고받고, 코뿔소와 하마를 반반씩 닮은 듯한 거대한 동물 '에럼펀트'를 붙잡으려 엉덩이를 씰룩이며 구애의 춤을 춘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꾼 조앤 롤링의 지문은 처음 각본가로 나선 이 영화에도 선명하다. 해리 포터 소설 각 권 이야기의 책갈피에 묵직한 주제 의식을 녹여넣곤 했던 롤링은 이 영화에서도 장면의 행간에 슬쩍슬쩍 자신의 메시지를 숨겨 놓았다. 주인공 '뉴트'는 본편 최악의 괴물 '옵스큐러스'에 대해 "머글(일반인)이 우리(마법사)를 사냥하던 때 자신의 마법을 숨기려 했던 어린 마법사들에게 기생하며 생겨났다"고 말한다. 나와 다른 타자(他者)를 배제하고 감금케 한 증오가 세월을 묘판 삼아 괴물로 자라나고, 결국 미워하고 핍박했던 주체를 향해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의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그 폭력을 폭발시키는 것 역시 학대받고 소외당한 사람 안에 숨겨진 작은 증오의 불씨라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으로 아픈 기억이 다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서진 뉴욕을 복구하는 마법사의 지팡이로 배신당하고 헤집어진 사람의 마음도 스르륵 치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132분 상영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 해리 포터와 함께 자란 젊은 관객들, 아이와 함께 볼 영화를 찾던 가족 관객들의 극장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질 것 같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