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왜가리 앉은 소리도 절벽에는 황금이 숨겨져 있다던데

보물섬 이야기

고려 개국공신이자 승주 땅, 지금 전라남도 순천 지역 호족이던 박영규가 한 섬에 황금을 숨겨뒀다는 소문이 돌았다. 천년 넘게 떠돌던 소문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서는 일본인이 해저 금광에서 캐낸 황금을 바로 그 섬에 숨겨두고 철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소문이었으니 누구 하나 찾으러 나서지 않았다. 1972년 손연수라는 섬사람이 마침내 구체적인 소문을 가지고 왔다.

1627년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가던 네덜란드 상선이 해적선을 만나 이 섬 동굴 속에 황금을 묻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 부대에 근무할 때 동료였던 미군에게 들은 소문이었다. 그 미군은 "성경책에 지도를 그려놓고 섬에는 'soji do'(소지도)라 표기해놓았다"고도 했다. 손연수는 이 소지도가 자기가 태어난 섬 소리도라 굳게 믿었다. 소리도는 전남 여수시 남면 남쪽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생김이 물수리를 닮아서 소리도라 했으나 1397년 조선 태조 때 솔개 연자를 써서 연도(鳶島)로 이름을 바꿨다. 그 보물섬 이야기다.

손연수와 소리도

1932년생인 손연수는 영어에 능통하고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군부대에 근무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실행에 옮긴 1972년, 나이 마흔 먹은 이 사내는 삽자루와 곡괭이를 싣고서 배를 몰고 섬 남쪽 솔팽이굴로 들어갔다. 솔팽이굴은 해안 절벽에 깊게 뚫린 동굴이다. 절벽 위쪽에는 1910년 만든 등대가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럴싸한 장관이고, 손연수에게는 노다지 절벽이었다. 그런데 칠흑처럼 어둡기도 하거니와, 끝은 자갈로 막혀 있어서 더 이상 탐사는 불가능했다.

동굴 속에서는 절벽 너머 덕포마을 부뚜막 누룽지 긁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니, 동굴이 덕포마을 지하까지 뚫려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손연수는 거기에서 그쳤다. 이 연도 사내는 이후 착실하게 살다가 진해로 이주해 몇년 전 하늘로 갔다. 보물에 관한 세 번째 소문도 소문으로 끝났다. 전설에 따르면 이보다 2000년 전 불로초를 찾으러 온 진시황의 서불(徐市) 일행도 연도를 찾았다. 불로초는커녕 호위 장수 두 명만 잃고서 제주도로 떠났다고 했다. 불로초도 황금도 소문만 무성하고 연도는 여전히 미궁(迷宮) 속이다.

미궁, 소리도

미궁이라 할 만한 섬이다. 같은 여수시 남면인데, 연도는 여수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40분을 가야 나온다. 그만큼 먼바다에 있는 섬이요, 그만큼 소외된 섬이었다. 오죽하면 기상청이 2014년 12월 10일 예보부터 연도를 '먼바다'에서 '앞바다'로 변경하자 섬사람들이 그리 반가워했을까. 범접하기 힘든 물리적인 위치가 보물에 관한 전설과 소문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어렵사리 섬에 도착하면 미궁은 낙원으로 변한다.

갯바위에서 낚시만 던지면 감성돔을 비롯해 온갖 물고기가 알아서 올라오니, 낚시꾼들에게 우선 천국이다. 낚시꾼들이 서 있는 그 갯바위, 갯바위를 바다로 내밀고 있는 절벽들이 하나같이 기암괴석에 규모도 웅장하니 섬을 찾은 유람객들에게도 천국이요 낙원이다. '천국' '낙원' 같은 단어는 어휘력이 모자라고 과장이 심한 사람들이 쓰는 단어다. 그런데 연도를 이야기할 때 이 단어들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태초에 바닷속에서 솟구친 암석들, 암석을 띠처럼 갈라놓은 단층들, 그 위를 바다가 덮치며 만든 동굴과 기암괴석, 코끼리를 닮은 바위, 콧구멍을 닮은 바위, 형형색색 절벽과 동굴…. 섬이 생성되는 지질학적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거기를 물새와 뭍새들이 다 함께 달라붙어서 물고기를 노리고 있으니 화조도(花鳥圖)가 따로 없다. 1910년 남쪽 절벽 위에 세워진 새하얀 등대까지 겹치면 이건 진짜, 환상이다.

평생 섬에서 산 강이석

그 낚시꾼과 관광객을 수발하면서 강이석은 올해 일흔여덟 살이 되었다. 평생을 연도에 살았다. 여객선이 들어오는 역포항 입구에서 수퍼마켓을 하고 민박을 한다. 그가 말했다. "왜정 때는 섬에 소나무가 많았다. 일본인이 사무소 차려놓고 국유림으로 관리했지. 해방되고 세상 어지러울 때 다 땔감으로 잘라먹었다. 민둥섬을 어렵게 다시 살려 지금 소리섬이 된 거다." 이 토박이는 1962년 부사관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 남대문에서 건어물을 팔았다. 그러다 강원도 강릉에서 오징어배를 타며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고향에 돌아와 제주도 아가씨 다섯 명을 부리며 물일을 했다. 이후 안 해본 일이 없다. 연탄도, 기름도, 소주도, 막걸리도 팔았고 부탄가스도 팔았다. 그 돈으로 세 남매 시집 장가 보내서 작년에는 유럽 여행도 가봤다. 파는 물건이 뭐가 됐든, 그 세월 동안 강이석의 상점은 항구 입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가 말했다. "연도에 있던 옛 국민학교는 학생이 500명이 넘었다. 내 큰아들 졸업할 때 독서하는 소녀상도 내가 만들어줬지. 그런데 그놈의 씨프린스호 때문에…."

씨프린스호와 유령섬

1995년 7월 23일 14시 20분 광양만을 출발한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연도 앞 무인도 작도에 충돌했다. 3호 태풍 페이가 남해로 돌진하던 무렵이었다. 작도에서 기관실이 파손된 유조선은 기름이 연쇄 폭발하면서 솔팽이굴을 지나 남서쪽 덕포마을 앞바다로 떠내려갔다. 기름 5000톤이 유출됐다. 몽돌해변은 물론 멀리 부산 해운대까지 기름띠가 흘러갔다. 초대형 환경오염 사건이었다. 선원 20명 가운데 19명은 주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구해내고 한 명은 실종됐다. 지금도 갯벌을 깊이 파면 그 기름때가 발견된다고 한다. 강이석이 말했다. "바다가 죽었으니 사람들이 다 떠났다. 지금 있는 초등학교에는 파견 나온 공무원 아이들만 다니겠지. 섬에 아이가 어딨어. 어른이 없는데." 한동안 연도는 유령섬이 되었다. 전설, 소문만 미궁 속에 떠돌았다. 그리고 세월이 20년 흐르더니 연도가 다시 세간에 오르내리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진짜 보물섬이었다.

21세기 보물섬 연도

젊은 사람 다 떠난 섬에서 노인들은 방풍나물을 키운다. 바닷가 바위에 자생하던 방풍을 집집이 다 키운다. 2년 전에 멧돼지 가족이 헤엄을 쳐서 섬에 들어왔다. 다른 작물은 다 엉망진창이 되는데, 이 멧돼지들이 방풍은 건드리지 않았다. 노인들이 앉아서 수확하기도 좋고 험한 해풍에도 잘 자라주니 이런 고마운 풀도 없다. 예전부터 살던 고라니가 행패를 부리긴 하지만 다른 작물보다는 훨씬 낫다. 씨프린스호가 망쳐놨던 덕포마을 몽돌해변도 원상복구됐다. 씨가 말랐던 물고기도 되돌아왔다. 해변이 복구되고 바다가 부활했으니 외지인들도 돌아왔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돌아왔다. 해안가 험한 절벽은 멋진 구경거리로 변했다. 파도 들썩이던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넘친다. 섬 자체가 보물섬이 된 것이다.

그래서 연도에 닿은 외지인들은 늘상 아쉽다. 여수로 나가는 배가 오후 4시 한 차례뿐이니 불과 반나절에 보물섬을 일주하며 수다를 떨고 보물을 찾아야 하니까. 그러다 아쉬움에 배를 타고 뭍에 오르면 휘황찬란한 여수 밤바다가 열리니, 보물섬에서 화려한 문명 세계까지 불과 1시간 40분이다.

[연도 여행수첩]

〈가는 길〉

여수-연도 왕복 선박: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2회(오전 6시 20분, 오후 2시) 출발, 연도에서 오전 8시, 오후 4시 여수행 출발. 예약 및 예매는 불가능하다. 여수여객터미널이나 연도 항구에서 구입해야 한다.

〈섬 여행 정보〉

1. 연도 민박 및 섬 유람과 낚싯배: 연도 홈페이지인 yeondo.kr 참고. 이곳에 나와 있는 민박집에 문의하면 배도 알선해준다.

2. 섬 내 교통: GS칼텍스가 기증한 마을버스가 섬 관통도로로 운행. 1000원. 나머지 섬 내 관광은 도보로 해야 한다. 현재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 공사가 진행 중이다.

3. 덕포마을에서 등대까지 가는 트레킹 코스 추천. 나무데크와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4. 기타: 격포항에 수퍼마켓 한 군데. 다른 곳에는 상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