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이 영화, 장르가 '강동원'

"어른이라는 건 대체 언제 되는 걸까. 스무 살 지난 지 한참인 것 같은데, 시간이 풀리질 않아."

남들의 시간은 멈춰 있는데 혼자 키가 자라고 나이를 먹은 '성민'(강동원)은 말한다. 보름달이 뜨는 날만 나타나는 동굴, 시간을 뺏어가는 요괴의 알, 멈춰진 시간, 그 시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소년과 소녀의 마음…. 이런 만화 같은 이야기가 진짜인 듯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소년을 연기하는 이가 나이를 거꾸로 먹는 피터팬 같은 배우 강동원(35)이기 때문일 것이다. 16일 개봉한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은 근래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독특한 판타지 멜로다. 달이 한 번 차고 기우는 동안 소년은 청년이 돼 돌아오지만 어른들은 그를 유괴범이라 여겨 뒤쫓고, 오직 한 소녀만이 그를 믿으며 함께해준다.

박찬욱 감독 연출부 출신으로 독립영화 '잉투기' 등으로 주목받았던 신예 엄태화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소년과 소녀 둘만 아는 비밀 언어로 쓰인 일기장, 비누에 새긴 얼굴 조각 등 아기자기한 소품과 미술로 '세월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믿음'이라는 서사의 뼈대에 살과 근육을 더해간다. 정지된 시간 속 소년들의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모두가 멈춘 시간 속 홀로 시간이 흐르는 아이들은 배달 중인 피자와 콜라를 집어 먹고, 사람을 줄에 묶어 풍선처럼 둥둥 띄운 채 끌고 다닌다. 섬세한 화면 구성과 물 흐르듯 부드러운 카메라 이동도 감탄할 만하다. 소녀의 귀밑에서 살짝 팔랑이는 솜털이나 깜빡이는 속눈썹 같은 것을 어루만지듯 클로즈업하는 장면,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사람의 몸을 느리게 따라가는 카메라 등이 특히 그렇다.

극장가엔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의 장르는 강동원"이라는 농담이 있다. 그가 나온 영화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열성 팬층이 두꺼운 데다, 스크린 위의 존재감도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강동원은 '팔만 뻗으면 발레'라는 명성 그대로,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해지고 늘어진 스웨터를 입었어도 자신만의 기(氣)를 뿜어낸다. 일본 순정만화를 닮은 판타지 멜로 서사는 취향에 따라 호오(好惡)가 갈릴 것이다. 강동원 팬 이외의 관객들이 얼마나 반응하느냐가 흥행 성적의 관건. 본래 가을 극장가는 멜로가 강세를 보이는 시즌이다. 올해는 눈에 띄는 멜로가 없어 재개봉 외화 '노트북'(2004)이 어부지리 흥행을 누렸다. 수능 끝난 수험생, 멜로에 목마른 여성 관객을 유인할 매력은 충분해 보인다. 후반부에 호흡이 느려져 상영 시간 129분은 좀 긴 듯한 느낌.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