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한마디로 '물 들어오는 대로 노 젓자'죠"

입꼬리를 비뚤게 끌어올리며 이죽대던 악당 '두꺼비'의 모습이 겹쳐져서일까. 선한 인상으로 기억했던 배우 정성화(41)의 눈이 번들거렸다. "감독님이 '눈빛 보니 악역 제대로 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나빠질 때의 모습, 내 안에 있던 악한 얼굴을 꺼내 쓴 것 같아요. 악당은 자연스러워야 진짜 미우니까요."

도박 볼링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은 11월 중반 극장가에서 외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맞선 흥행 2위로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정성화가 연기한 '두꺼비'는 전직 볼링 국가대표 '철종'(유지태)을 괴롭히고 이용하다 스스로 파멸로 향해 가는 볼링장 사장. 뮤지컬 무대에선 수퍼스타지만 영화에선 스치는 조연일 때가 많았던 그가 난생 처음 맡은 '주연 같은 조연'이자, 서사를 이끌어가는 악역이다. "악역이라길래 시나리오도 안 읽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아직 스크린 위에선 텅 빈 흰 도화지인데, 정극 악역을 해낸다면 연기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질 테니까요." 유난히 '첫 경험'이 많은 영화였다. 그는 "처음 여자(이정현) 머리채도 휘어잡고, 볼링핀으로 남자(유지태) 머리통도 내리쳤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때서야 사람 좋아 뵈는 본래 정성화의 얼굴이 돌아왔다.

이 영화 전엔 평생 볼링을 딱 세 번 쳐 봤다. 영화를 위해 하루 5시간 볼링을 연습하면 4시간은 헝겊 콩주머니를 손에 들고 폼을 익혔다. "몸에서 볼링 선수의 냄새가 나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제일 공을 들인 건 '두꺼비'의 캐릭터 구축. "도끼눈을 뜨고 세게만 가면 오히려 밋밋해지거든요. 사람을 구워삶는 수완이 좋아 볼링장 장사도 잘하고 기부도 많이 하지만, 선수 때 이겨보지 못한 '철종'을 괴롭히는 데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캐릭터를 쌓아올렸지요."

집착이 강한 '두꺼비'와 달리 그는 "포기도 과감하고 타협 잘하는, 산이 높으면 오르는 대신 다른 길로 돌아가는 성격"이라고 했다. "뮤지컬에서도 조승우처럼 멋있어 보이려 하면 꼴사나워진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나만의 색깔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지요. 그래도 노래만큼은 죽도록 힘들어도 꼭 가 닿고 싶은 목표입니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두꺼비'처럼 정성화에게도 '내 인생의 거짓말'이 있을까.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개그맨 때는 개그 판에 뼈를 묻겠다고 했고, 드라마 할 땐 '이거야말로 내 길'이라고 했죠. 뮤지컬 하면서는 또 '이제야 내 길을 찾았다'고 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물 들어오는 방향으로 노 저으면서 살았다고 할까요."

'신비한 동물사전' '가려진 시간' 등 화제작이 즐비한 극장에서 관객은 왜 '스플릿'을 선택해야 할까. 정성화가 다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재밌거든요. 뒷심 세게 받을 거예요, 하하." 이제야 들어온 물에 노 젓기 시작한 이 배우, 스크린 위에서 더 많은 '뒷심 스트라이크'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