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발디딜 틈은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참가한 일반 시민들 숫자가 지난주보다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 집회가 열린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쯤. 집회 동향을 모니터링하던 경찰은 광화문광장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가득 들어찬 집회 참가자 수를 18만명(주최 측 추산 60만명)으로 추산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가자 수가 예상 밖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당초 이날 참가자 수를 7만~8만명으로 예상했다. 이날 집회엔 민노총 등이 전국에서 조직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인 26만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3차 촛불 집회(12일) 때는 전국에서 모인 이른바 '조직 대오'가 12만명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3차 촛불 집회 때 14만명이었던 일반 시민 참가자가 1주일 만에 3만~4만명 더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외에도 부산·대구 등 전국 70개 도시에서 9만2000여명(경찰 추산)이 촛불 집회에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김혁진(31)씨는 "박 대통령이 비리 의혹을 시원하게 해명하지 않고 검찰 수사도 제대로 안 받으려 하는 것 같아 화가 나서 나왔다"며 "다음 주에는 친구들과 함께 또 나오겠다"고 말했다.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집회에 서울 60만명을 비롯, 전국적으로 95만명(경찰 추산 24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IT 기업 '조이코퍼레이션'이 이동식 감지기로 이날 서울 집회 참가자 수를 측정한 결과 오후 7~8시 사이에 총 22만7618명(오차 범위 ±10%)이 모인 것으로 나왔다. 오후 2~9시 사이 집회 현장에 다녀간 사람은 74만명으로 측정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순간 최대치를 측정하는 경찰 추산 인원과 연인원을 모두 고려하는 주최 측 추산 모두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 인근 12개 지하철역 하차 인원은 지난주(86만4000여명)보다 30만명가량 적은 57만5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집회 자체도 이전 세 차례보다 훨씬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경찰은 원래 시위대 행진을 청와대에서 900m 떨어진 내자동로터리에서 남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까지만 허용했지만, 법원은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내자동로터리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3차 집회 때 일부 시위대가 내자동로터리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다음 날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자정쯤 자진 해산했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지난 12일 집회 때는 23명이 폭력 등의 혐의로 연행됐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車壁)에 항의의 뜻으로 '대통령 즉각 퇴진' 같은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지만, 집회가 끝날 때쯤엔 시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스티커를 제거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쓰레기봉투를 들고 시위 현장을 청소하는 30대 가장은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17일 수능 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 수천여명도 촛불을 들고 나왔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본 집회에서 한 대학생이 자유발언대에 올라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촛불은 바람 불면 옮겨붙는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SNS 등을 통해 모여서 삼삼오오 나온 시민들은 '민주묘(猫)총' '혼자 온 사람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黨)' 등 재치 있는 깃발을 만들어 나오기도 했다. 지난주 가수 이승환에 이어 이번엔 전인권이 집회의 마지막에 무대에 올라 '행진' '걱정말아요 그대' '애국가' 등을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유도했다. 주최 측은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5차 촛불 집회에는 역대 최다인 100만명 이상이 모일 것"이라고 20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