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예의 없게 말이야.”
서울 동대문구 지우현(26)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씨는 8월 27일 운동 삼아 우이동에서부터 백운대를 오르기로 결심하고 도선사 입구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유독 극심했던 여름의 무더위가 급작스레 가시고 선선한 가을 날씨가 성큼 다가온 날이었다. 간만의 산행이라 백운대 바위 구간에 들어서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좁아진 길에서 고개를 땅에 박고 올라가는데 후다닥 내려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쳤다.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얼굴이 불콰한 중년 남성이 “젊은 사람이 왜 길을 막냐”며 쏘아 붙이더니 그대로 내려갔다. 지씨는 “내려오는 사람이 양보해야 된다고 알고 있어서 당시 몹시 불쾌했다”고 토로했다.
등산의 계절, 가을이 되어 동네 뒷산부터 설악산에 이르기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등산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 산행에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으려면 서로 예절을 지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머리로는 등산 시 지켜야 할 매너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산행에 몰입하다 보면 소홀해지기 쉽다.
163명 중에 양보한 사람은 28명뿐
등산 매너는 사람이 취해야 할 산에 대한 예의이자 산에서 사람을 대하는 예의다. 산을 산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하면 연도별 쓰레기 배출량은 2008년 2,774톤에서 2011년 1,997톤, 2015년 1,298톤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이러한 의식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등산로 곳곳에서 쓰레기를 볼 수 있다. 국립공원 2015년 3/4분기 쓰레기 배출량은 472톤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버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남이 흘린 것을 줍는 모습도 필요하다.
정상에서 “야호” 소리를 지르는 등산객은 이제 드물다. 산에서 고성을 내면 야생동물과 조류에 영향을 끼친다. 조류가 받는 스트레스가 특히 심각해 산란을 포기하거나 부화 중인 알을 깨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신, 단체 등산객이 몰려와 술에 취해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고 있다. 9월 11일 일부 몰지각한 등산인들이 백운대 슬랩 주변의 노지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격렬한 언쟁을 벌여 주변 등산객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과 산의 예의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 간의 예의다. 등산객에게 인사하기, 음악을 틀고 다니지 않기, 올라오는 사람에게 우선 양보하기, 음주 자제하기 등 이미 등산객들 대부분은 이러한 에티켓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8월 28일 등산 매너를 주의 깊게 보면서 지씨와 같은 코스로 산행에 나섰다(통계적으로 엄밀한 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있는 통계는 아님을 밝힌다).
편도 3.9km의 백운대 코스를 오르며 163명의 하산객과 조우했다. 두 사람이 걷기에는 빠듯한 병목 구간에서 먼저 자리를 비키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오르자 고작 28명, 17%의 사람만이 양보했다. 서울 강북구 이석재(52)씨는 “올라오는 사람에게 먼저 양보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길이 좁고 올라오는 사람이 힘들어 보이면 꼭 기다려 주고 응원도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반면 양보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매너를 모르거나 알고도 미처 몸이 안 움직인다고 한다. 성북구 김모(42)씨는 “그런 에티켓에 대해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며 “내려가는 쪽이 빠르니깐 먼저 지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동구 박희진(36)씨도 “평소에 그다지 의식을 안 했다”며 “자연스럽게 오르는 사람이 걸음을 멈춰서 먼저 지나가거나 사람이 많은 쪽이 먼저 움직이곤 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한 “북한산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그런 걸 세세하게 따지면서 등산하느냐”고 일갈을 날린 등산객도 있었다.
또한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틀고 산행하는 사람도 3명이나 있었다. 그것도 시끄러운 트로트다. 김재운 전 한국등산학교 사무국장은 “이러한 소음은 다른 등산객들의 마음의 휴식을 깨뜨린다”며 “가급적 산에서는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특히, 등산 중 술을 마시는 행위는 주변의 등산객과 산,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모두 좋지 않다. 코오롱등산학교 원종민 교무는 정규반 수업에서 “대부분의 산악사고는 실족에 의한 것”이라며 “그 이유는 술에 의한 것이 크다”고 설명했다. 술을 마시면 균형감각과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술 냄새가 주변의 등산객을 자극하고 목소리도 커져 폐를 끼치게 되므로 등산 중에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등산 매너, 위하는 마음이 중요